[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법명을 평등법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차별금지법의 궁극적 목적인 ‘평등’을 법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정의당은 지난달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인종 등 신체조건과 종교·사상 등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고용 형태,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한다는 게 이번 법안의 골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같은 달 30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견표명'을 결의했다.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법명을 '평등법'(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변경하고, 평등법 시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명을 ‘평등법’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차별은 ‘상이한 대우’를 의미하지만, 평등은 단어 자체로 정당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은 2000년대 중반부터 쓰여왔지만, 세계적 사례에서 보면 차별금지법이 보편적 법명은 아니다”라면서 “차별금지법은 평등 가치 실현을 위한 증진정책이다. 국어적으로 봤을 때 ‘평등 증진계획’에 가깝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법에 평등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면서 “차별금지법의 궁극적 목적이 ‘평등 지향’이라면, 부정적 요소가 들어간 법명보단 ‘평등법’이 적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성수 교수는 정의당 ‘포괄적 차별금지법’ 조문에 들어간 차별시정 기본계획·차별시정정책·차별금지·차별 구제를 평등 기본계획·평등정책 등의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평등법 시안에 대해서는 “‘평등법’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는 평등 증진에 관한 내용이 부족하다”면서 “평등실태조사, 평등영향평가, 평등정책 개선 권고, 평등 교육 등이 법에 포함되어야 ‘평등법’이라고 약칭하는 이유가 충분해진다”고 조언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금지 사유에 경제적 상황·사회적 지위·노조 활동·직업·유전정보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일각에서 차별금지 사유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최근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 중 차별금지 사유가 20개 이상인 곳도 있다. 과감하게 차별금지 사유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 구제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법안은 차별 대상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시정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 교수는 “차별 대상자가 여성이면서 장애인일 경우 성차별로 볼 거냐, 장애인 차별로 볼 거냐”면서 “차별 시정기구가 혼재되면 비효율적이다. 차별 시정기구를 하나로 단일화해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성수 교수는 방송법·정보통신망법에 혐오 표현 관련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은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으로, 그 자체로 규제의 대상이 되긴 힘들다”면서 “다만 일반 광고를 통한 차별 공표 금지를 검토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광고는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표현의 자유가 일부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홍성수 교수는 “방송법에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선언적 규정을 넣어야 한다”면서 “이미 방송심의규정과 정보통신망법에는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상위법에 혐오 표현 금지규정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방송과 인터넷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인 근거 규정을 두거나 선언적 규정이라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유승익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사유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차별금지 사유에 고용 형태·직업 등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현황을 보면 성정 지향은 0.7%인데 고용영역 진정은 40% 수준이다.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응답자 90.8%가 ‘차별을 하거나 당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면서 “누구나 차별의 가해자·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개인적 책임과 해결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책임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평등법 제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 발의를 통해 차별금지법이 나왔다”면서 “당시는 민주당이 앞장섰다. 하지만 일부 교계의 반대, 정치적 유불리 때문에 (민주당이) 뒤로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민주당과 통합당에 토론 참여를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다”면서 “정의당이 단독으로 토론회를 개최한 점이 아쉽다. 국민 대다수가 차별금지법을 원하고 있는데,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민심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은 “일부에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이 왜 차별금지법에 동참하냐’고 의문을 표한다”면서 “차별금지법은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할 정신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이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에 성폭력·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면서 “차별금지법을 계기로 민주당 내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과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호주제 폐지 때도 얼마나 많은 반대를 딛고 일어섰나. 경험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건 이룰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최 위원장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당해선 안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면서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국제 사회에서 일반적인 규범이다. 현재 원불교·불교·천주교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는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와 장혜영 의원 주최로 2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발제자는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토론자는 유승익 신경대 교수,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서수정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총괄과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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