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 <반도>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도>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개봉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배경도 충분했다. 기획단계에서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멸망한 대한민국이라는 배경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걱정하는 현 시점에 가장 주목 받는 아이템이다.

190억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전작인 <부산행>의 아성에 힘입어 전 세계 180국 이상에서 선판매에 성공해 손익분기점을 대폭 낮춰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낸 상태였다. 위기에 빠진 극장 산업을 되살릴 대작으로 지목되어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553개)보다 많은 역대 3위의 스크린수(2575개)를 배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반도>는 대중적으로 실패한 영화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주 언급되는 단점부터 살펴보자. 일단 압도적으로 언급되는 ‘신파적’이라는 지적. 해외평론가들이 <부산행>의 장점으로 ‘감성적(Emotional)’인 것을 꼽은 것처럼 신파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슬픔 또한 인간이 느끼는 오감 중 하나이고 잘만 활용하면 작품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 <반도>는 신파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다.

다음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배경으로 전락한 좀비라는 점. 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좀비 중 어느 부분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멸망 이후 인간군상의 아귀다툼에 집중한 측면에서 보자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다면 좀비떼가 나오든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이상 증식한 비둘기가 나오든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영화 '반도' 포스터

사회파 감독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들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는 어떤 사건 이후의 사회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만든 한국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자 반영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부산행>은 제외하고라도 부정적 평가가 다소 많았던 <염력>도 재평가 요소는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사교집단인 맨슨 패밀리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샤론 테이트에 대한 애도를 담은 대체역사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오를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용산참사를 다룬 대체역사물인 <염력>은 감독 나름의 위무이자 초능력자가 등장해야만 자본의 탐욕과 공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블랙코미디로도 볼 수 있다. 화끈한 슈퍼히어로 장르로 홍보 방향을 잡은 제작사의 판단 착오와 슬랩스틱에 능한 류승룡의 개인기에 지나치게 지충한 연출 방식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관객들이 전달 받은 방향. 그리고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으로 인식되는 연상호 감독만은 색깔은 명확했다. 하지만 <반도>는 어떤 메시지와 색깔을 담고 있는가?

도입부에서 얼핏 내비친 문제의식은 나쁘지 않았다. 국제법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가난한 난민으로 홍콩에 체류하며 바이러스의 진원지 출신이라며 차별 당하는 주인공은 불과 얼마 전까지 동아시아 사람들이 서방국가를 방문할 때 겪었던 인종차별의 반영이며 동시에 ‘조선족 추방’ 운운했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모순적인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통해 변화를 겪고 마지막에는 무슨 선택을 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반도>는 애써 찾아낸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등장인물의 내부동력을 확인해보자. 특수부대 대위 출신인 정석(강동원)은 탈출선에서 좀비가 된 누나와 조카를 포기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폐인처럼 살고 있다. 이때 매형 철민(김도윤)은 좀비만 남은 한국에서 2,000만 달러를 가져다주면 몫의 절반을 챙겨주겠다는 갱단의 제안을 전한다. 이유야 어쨌든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간 정석. 3일 내에 2,000만 달러가 든 트럭을 끌고 인천항으로 돌아오면 다시 홍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석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위험에 빠진다.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됐다가 미쳐버린 631부대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택배배송차량에 돈가방이 담겨있던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좀비의 먹이가 되기 직전, 4년 전에 구조요청을 거절하고 방치했던 민정(이정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민정의 목적은 631부대와 좀비떼를 피해 두 딸 준이(이레), 유진(이예원). 그리고 정신이 이상한 김 노인(권해효)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석에게 사연을 전해들은 민정은 631부대에서 트럭을 탈취해 인천항으로 향할 계획을 세운다. 한층 강화된 CG로 실감나게 구현한 멸망 이후의 대한민국. 압도적인 물량으로 몰아치는 좀비떼의 습격과 긴장감 넘치는 카체이싱을 지나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야 할 이야기는 민정을 만난 이후로 길을 잃는다. 역시 메시지의 부재 탓이다.

영화 '반도'

명대사의 부재가 곧 메시지의 부재

메시지 없음은 <반도>에서 명대사라고 생각할 만한 문장이 단 하나도 없다는데서 드러난다. <부산행>의 용석(김의성)은 ‘저 새끼 감염됐어!’ 한 문장으로 국민악역에 등극했다. 사다리 걷어차기, 발목잡기, 이기주의로 점철된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지적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반도>에서 어렵게 찾은 유의미한 대사는 매형인 철민이 정석에게 두 차례나 던지는 ‘시도는 해봤냐‘는 질문일 것이다.

이때 말하는 시도는 무엇일까. 무일푼 난민이 목숨 걸어가며 한탕 거하게 땡겨 인생역전 할 시도를 말하는 건가. 존재조차 모르던 생존자를 구출해 속죄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건가. 화살을 쏘고 과녁을 그리니 감동적이어야 할 핵심대사가 소 판 돈으로 굴지의 대기업을 키워낸 왕회장님이 새마을운동 시절에나 할 법한 ‘노오오력’ 타령으로 전락한다.

김 노인(권해효)의 상황은 더 처참하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기성세대의 부채감을 지녔지만 응답없는 무전기를 붙잡고 미군 부대에 구조요청을 할 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등장한 미군은 메시지의 부재를 가속시킨다. 본래 민간인을 지키려 투입된 정규군 631부대의 타락은 반도에서 탈출할 가망이 없다는 절망에서 비롯됐다.

소리에 민감한 좀비떼를 두고도 엄청난 소음을 유발하는 헬기를 운용할 정도로 정상적인 체계를 갖춘 것으로 판단되는 미군이 4년 간 단 한번이라도 본인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경험 많은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재건의 발판이 마련되지 않았을까.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은 미군을 최악의 방식으로 등장시켰다며 자주 언급되지만 레일건으로 디셉티콘의 야욕을 박살낸 전과라도 거뒀다. <반도>에서 미군은 응급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정타는 자식세대가 먹인다. 김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미안하다고 유언을 남기는 순간 준이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제가 살던 세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좀비와의 공존이 일상이 된 그들에게 대한민국 땅은 사실 헬조선이 아니라 해피조선이었다는 이 당황스러운 대화는 부모와 자녀가 평소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커뮤니케이션의 오류일까. 아니면 감독조차 영화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혼란스럽던 내면의 표출일까.

영화 '반도'

좀비떼는 이유 없이 나와도 되지만

<반도>가 레퍼런스로 삼은 게 분명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2010년대를 대표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가 된 이유는 ‘지옥에서 도망친 자에게 천국은 없다’는 메시지 덕분이었다. 빨갛고 파란 섬광탄과 누런 모래사막보다 선명한 메시지가 압도적인 카체이싱 액션. 황폐한 세계의 근거이자 토대가 된 것이다. 좀비떼는 이유 없이 대한민국을 휩쓸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의미 없는 추격전과 카체이싱 액션이 러닝 타임을 휩쓰는 건 이해해줄 수 없다.

창작자의 과거작을 최고작이라고 언급하는 건 칭찬을 가장한 결례라고 한다. 모든 신작이 필모그래피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건 히치콕이나 스콜세지도 달성하지 못한 영역이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의 과거 작품을 강하게 추억하는 관객으로써의 결례는 <반도>까지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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