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사회생했다. 무죄취지 파기환송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론을 놓고 정치판결이라는 둥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나 7대 5로 나뉜 대법관들의 성향을 볼 때 법리 적용이란 측면에서 논쟁적 판결일 순 있어도 대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일례로 실질적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걸로 추측되는 권순일 대법관의 경우 다수의견에 손을 들어준 걸로 돼 있는데, 보수정권에서 지명된 인사이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이재명 도지사의 ‘정치적 몸값’이 어디까지 올라갈지에 집중되는 것 같다. 당장 나오는 건 여당 전당대회에 미칠 영향이다. 당 대표 선거는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의 양자대결이 유력하다. 대권주자들의 진검승부처럼 보이다 보니 이재명 도지사가 김부겸 전 의원과 손을 잡고 ‘이낙연 대세론’을 무너뜨리는데 함께 할지에 눈길이 쏠리는 것이다.

김부겸 전 의원과 ‘장외주자’들 간의 연대설은 이전에도 꾸준히 흘러나왔다. 대표적인 게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동맹설이다. 지난 6월 총리 공관에서 낙선자 만찬이 열린 자리에서 두 사람이 따로 뭔가 밀약(?)을 맺었다는 식의 관측이다. 물론 이런 소문에 대해 두 사람은 모두 펄쩍 뛰며 부인했다. 그러나 전당대회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국무총리나 광역지자체장이 김부겸 전 의원을 통한 대리전을 치르는 형태로 대권 경쟁에 끼어들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은 그럴법해 보이는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이런 ‘설’들이 이미 있어 왔는데 이재명 도지사 사건이 무죄 취지 파기환송 됐으니 이런 저런 얘기가 다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재명 도지사 관련 판결이 전당대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다. 첫째, 당내 기반이 강하다고 볼 수 없는 이재명 도지사 입장에서 전당대회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할 방법 자체가 마땅치 않다. 둘째, 이재명 도지사 입장에서 전당대회에 개입해 거둘 실익이 크지 않다.

‘대세론’의 문턱을 넘으려는 이낙연 의원은 친문 일부와 호남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탄탄한 지지세가 구축돼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낙연 의원은 이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내긴 했으나 어쨌든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함께하지 않은 구 민주계, 즉 ‘비문’ 출신인 것이다.

이재명 도지사는 친문 일부로부터 강력한 비토 정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점은 대권주자로서 앞으로도 족쇄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도지사가 대권을 겨냥해 전당대회와 관련한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면 오히려 이낙연 의원 지지세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이재명 도지사가 김부겸 전 의원과 결국엔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대구경북지역 출신에 수도권 기반을 갖고 부산경남 지지를 획득해 당 대선 후보가 된다는 ‘영남후보론’의 맥락 위에 서있다. 정치적 캐릭터가 겹치는 대목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당대회의 결과는 이낙연 의원은 신승, 김부겸 전 의원은 석패하며 이재명 도지사는 한 눈 팔지 않고 도정에 집중했다는 이력을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돼야 ‘7개월짜리 당대표’ 이후 본선을 준비할 불출마 인사들도 또 한 번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다.

이재명 도지사로서는 굳이 전당대회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여럿 있다. 광역지자체장으로서 평가를 한 단계 끌어 올린 계기도 코로나19 관련해 신천지 등 문제나 대북전단 살포에 적극 대응한 것이었다. 최근 부동산 대책 등 논란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도 이런 차원의 행보로 해석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이재명 지사의 대권주자로서의 ‘몸값’은 당분간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다. 그린벨트 문제에 대한 발언 내용은 명쾌하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이 집값을 잡는데 도움이 되긴 커녕 투기 수요가 몰리는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도심 재건축 재개발과 용적률 상향을 대안으로 언급한 것도 결국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 정부 부동산 정책의 큰 그림이 무너지면서 공급만능론에 사실상 투항하는 분위기란 점을 고려하면 그 와중에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한 것이다.

시류를 잘 읽으면서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제도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장점 외에도 ‘이재명 대망론’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시대정신’이다. 이 정권은 전임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이라는 시민적 저항의 맥락에서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를 도덕이라는 대의명분에 따라 통치 능력을 발휘하는 정권의 탄생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의명분은 허울 뿐이고 자기 사익 앞에서는 똑같이 심약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는 게 현실이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에 대한 정권의 태도는 어떤 진실을 떠나 이런 믿음의 근거가 되고 있다. 특히 박원순 시장 사건 피해자에 대한 이 정권 인사들 및 지지자들의 사실상 2차가해는 ‘이상’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제 편의 이해관계라는 ‘현실’ 앞에선 너무도 쉽게 본색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이재명 도지사가 갖는 우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도 이재명 도지사에게 ‘성인군자’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의명분’에 대한 냉소는 ‘힘 있는 우리 편’에 대한 도구적 선망으로 귀결된다. 이재명 도지사는 어쨌든 상대적으로 진보적 정책을 펴겠다고 하니 이게 어떤 면에선 다행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이재명 대망론’과는 별개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파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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