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모두 오보를 냈다. 지난 29일 김재철 MBC 사장이 급작스레 너무나 급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이후 본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김재철 사장의 사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제3자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사의를 표명한 건데 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물론, 그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단순히 '방통위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란 전망과 '결국,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 김재철 mbc 사장
하지만 많은 이들이 '총선 출마용'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김 사장이 진즉부터 총선을 준비하고 있단 유무형의 정황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총선 출마 외에는 돌연 사의를 표명할 까닭이 없어 보였다.

물론,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장직을 던지기에 너무 이른 시기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긴 했다. 사천 지역 정당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김재철 사장의 총선 출마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출마' 외엔 그 무엇도 그의 행보를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했다.

사실, '방통위 압박용'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논리다. 공영방송사 사장 자리가 무슨 회전문도 아니고 주무기관을 압박하기 위해 들락날락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수준에 못 미치는 얘기다. 세월이 워낙 하수상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 논리였다.

물론, 김 사장의 사의 표명 직후 이러저러한 전망이 엇갈리자 MBC가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김 사장의 사의 표명에 '방통위에 대한 항의'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욱 분명했다. 논리적으로 김 사장의 행위는 '사의를 통한 항의 표명'이었다. 옳고 그름, 지지여부를 떠나 이건 최소한 성립은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1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출석한 김재철 사장은 "사의할 뜻이 없다. 할 일을 하지 않는 방통위를 압박하기 위한 사의 표명이었다"고 밝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한마디로 사의 표명이 '공갈'이었단 얘기다. 기도 안 찬다. 공영방송 사장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공갈'을 행했단 얘기를 이처럼 서슴없이 하고 있는 꼴이란. 이번 논란의 표면적 발단이 된 진주 창원 통폐합의 경우 언론 본령의 문제라기 보단 김재철 사장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으로 결연히 사장직을 걸고 주무 부서를 압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갈죄는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 김 사장은 자신의 사의 표명이 방통위원들을 향한 '협박'이었단 점을 분명히 했다. 형법상의 명백한 '공갈'이다.

김재철 사장이 정말 무슨 생각으로 MBC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방문진 이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를 '재신임', '재선임'했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공공연히 '공갈'에 굴복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공영방송 사장 자리가 뭔가? 공영방송 사장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아무리 입장이 다르다고 하더라고 최소한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그만 둘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협박으로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와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낙하산 논란'이 일 때, "MBC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가 말한 '독립성'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수가 틀리면, 언제든 그만 둔단 협박은 아니었을 것이다. MBC가 김재철 사장의 사조직이 아니라면, 김재철 사장의 정치적 목적 실현을 위한 정거장이 아니라면 그의 사의는 지켜져야 한다. 그게 더 이상 공영방송을 망가트리지 않고, 공영방송 사장 자리를 그나마 사회적으로 지켜내는 최선이다. 특별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이 하는 행동에 최소한의 일관성은,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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