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있었던 극우 이슬람증오자인 안더스 브레이비크의 오슬로의 폭발테러와 우토야 섬 사회민주당 청소년캠프에서 벌어진 잔인한 학살극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끔찍한 사건이다. 하지만 2001년 9.11사태 이후의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구에서 급속도로 번져간 반이슬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간 서구 언론에서 보도했던 이슬람 관련기사들은 이슬람을 테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런 서구 언론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일반화는 당연시됐다. 즉, ‘이슬람은 곧 테러’라는 등식을 언론들이 성립시켜 왔다.

▲ 노르웨이 오슬로 폭탄테러 후 CNN에서도 배후로 이슬람을 지목하고 있다. 출처: CNN 캡쳐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노르웨이에서 테러사건이 터진 후 즉각적으로 서구 언론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배후를 이슬람 테러분자들의 소행으로 넘겨짚고 이슬람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설명하느라 열을 올린 일이다. 서구 언론들의 ‘습관화된 이슬람 죽이기’ 사례의 한 단면이다. 무슨 테러 비슷한 사건만 터졌다하면 이슬람을 최우선적으로 지목하는 것이 이젠 서구 언론의 보도관행이 되어버렸다. 테러분자의 정체가 이슬람을 증오하는 극우 기독교근본주의자라고 밝혀졌으나 빗나간 보도행태에 대한 서구 언론들의 자기비판은 아주 인색하다.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미 서구 언론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언론인으로서의 이성적 판단과 객관적 비판을 방해한다.

언론의 무서운 힘은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부정적인 영향이다. 세계 언론을 지배하는 서구 언론은 세계인들의 반 이슬람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이번 노르웨이 극우광신자인 브레이비크의 학살극 원인을 찾는다면 유럽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동서냉전 이후 서구의 새로운 공동의 적으로 부상한 이슬람을 9.11사태 이후엔 아예 세계의 적으로 몰아가지 않았는가?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부정적 정서는 역사를 거슬러 11세기 십자군 전쟁까지 올라가야 하겠지만, 거의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회교도국들에 대한 유럽의 반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마치 선조들이 내려준 반이슬람 유전자가 다문화사회에서 다시 활력을 얻은 듯 다시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열린 다문화주의와 반이슬람주의다.

무의식에 깔려 있는 유럽인들의 반이슬람 정서는 증가하는 이슬람권의 이주민을 우려의 목소리로 보도하는 언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려를 공포로 조장하는 우익보수 정치인들의 발언에 언론이 합세해 이슬람을 끊임없이 공격한 결과이기도 하다. 심각한 것은 유럽의 이 반이슬람적인 성향은 극우나 우익보수뿐만 아니라 좌파성향의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의 마음에도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럽언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덴마크 신문 Jyllands-Posten에서 게재해 문제가 됐던 카툰 출처: 웹사이트 perlentaucher.de 캡쳐
2006년 덴마크 신문의 모하메드-카툰 사건에서도 나타났듯 유럽언론들은 이슬람을 모욕하는 데는 한마음이다. 나치를 경험한 독일에서조차 이슬람에 대한 비판은 당연시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독일 언론에선 터부로 금기시되고 있고, 또 유대인이나 이스라엘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조심스럽지 못한 섣부른 발언은 정치생명의 끝을 의미하는 반면에, 이슬람이나 무슬림에 대한 비판은 관대하게 허용되고 있다. 이슬람을 비난하는데 있어 유럽언론인들은 ‘언론자유’까지 들먹인다.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자유가 이슬람 문제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함께 모하메드-카툰은 타 언론에서도 게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 유럽에선 난무했다. 이슬람권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행위로 서구의 가치인 ‘언론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언론인들의 발언과 함께 당시 유럽신문들이 앞을 다투어 ‘이슬람 비꼬기’인 모하메드-카툰을 보란 듯이 실었다. 이슬람권을 자극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이것이 유럽과 이슬람권 사이에서 발생한 모하메드-카툰전쟁으로, 무기 없는 십자군 전쟁이었다. 평소 덴마크 관련 기사는 서구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모하메드-카툰 사건엔 유럽언론들이 거의 단체행동까지 보여 준 치졸한 사례이다.

그뿐인가? 이슬람테러, 증가하는 회교도 사원건립, 샤리아(Scharia: 이슬람 율법), 명예살인, 여성들의 얼굴과 전신을 덮는 부르카 착용, 유럽 복지혜택 악용, 사회적응 거부, 무슬림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테러 등은 유럽언론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들이다. 이런 주제들은 아무리 사실을 전달한다고 해도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반면에 이슬람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는 유럽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언론의 속성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사건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오지만 너무 일방적이다.

모하메드-카툰에서 부르카를 쓴 두 여성과 칼은 모하메드처럼 이슬람은 곧 여성억압과 테러를 의미하는 ‘종교적 폭력’의 상징이다. 이렇게 유럽언론들은 판에 박힌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의 보도들을 생산해 왔다. 이것이 또한 서구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다문화사회를 주장하는 열려있는 사람들도 이 여성억압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부르카 앞에선, 또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테러 앞에선 이슬람을 거부한다. 물론 여성억압과 폭력을 찬성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이슬람에 대한 차별적 시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부르카 착용금지가 프랑스에서 2004년 이미 시작된 후, 이어 이탈리아에서 또 얼마 전엔 벨기에에서도 통과됐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 문제가 주요한 논쟁거리다.

▲ 독일 시사주간지 포커스(Focus) 그래픽자료 "무슬림이 서유럽을 정복하는가?"

한 독일의 시사 잡지인 포커스(Focus)의 2010년 2월 1일자의 한 기사 “유럽에서의 알라의 전위(Allahs Vorhut in Europa)"와 그 내용을 보면 이슬람에 의해 유럽이 정복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이슬람의 종교지도자들인 '임만(Imam)'들이 회교도사원에서 샤리아까지 상담해주고 있어 유럽의 법체계와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공포가 일반 언론을 통해 일반시민들에게 전달되는데, 일반시민들의 반이슬람 정서 형성과 브레이비크 같은 극우파들의 이슬람에 대한 거부는 당연할지 모른다.

언급한 기사의 그래픽제목 “무슬림들이 서유럽을 정복하는가?(Erobern die Muslime Westeuropa?)"을 보면 서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두려움은 직접적이다. 그래픽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을 살펴보자.

I 소수민의 증가(Wachsende Minderheit) : 현재 유럽공동체와 스위스엔 2천1백만에서 2천3백만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엔 유럽시민의 20%가 넘는 수가 알라신을 믿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I 젊은 무슬림의 전진(Junge Muslime auf dem Vormarsch) : 저자 크리스토퍼 칼드웰은 2050년엔 오스트리아에선 15세 이하의 과반수는 무슬림이 될 것으로 예언한다.

I 유럽도시들의 이슬람화(Islamisierung der EU-Städte) : 헝가리 경제언론인 카롤리 로란의 계산에 의하면, 무슬림의 수가 마르세유와 로테르담에서 이미 25%을 넘어섰고, 런던, 파리 코펜하겐은 10%가 된다.

I 아이 많은 가족(Kinderreiche Familien) : 무슬림 이주자들의 출산율은 유럽공동체의 평균을 넘고 있다. 브뤼셀에서 가장 많이 선택되는 남자아이 이름은 현재 모하메드이다.

유럽 도시 중 베를린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가 아닌 터키의 수도’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온다. 독일과 터키의 축구시합이 있을 때는 충돌을 우려해 베를린은 초긴장 상태이다. 물론 별 충돌은 없었지만 말이다.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는 프랑스가 가장 많은 인구의 10%(6-8백만), 다음은 독일이 인구의 5%(4백만), 영국은 인구의 4%(2백5십만) 등이며, 인구가 적은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는 대략 인구의 5% 선이다. 그래픽엔 사건 발생지인 노르웨이는 통계자료가 없지만, 학살자인 브레이비크는 4-5%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또 각 국의 회교도 사원 및 기도원 수는 독일에 2750개, 프랑스에 1600개, 영국에 1000개 등이다. 지난 회교도사원의 첨탑건축을 국민투표로 금지령을 내렸던 스위스에는 사원의 수가 122개 정도이다. 하지만 스위스의 첨탑금지 선거결과는 단순히 회교도사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정이 유럽전역에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르웨이 사건 후 브레이비크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유럽언론들은 그를 신나치주의자가 아닌 다문화를 거부하고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한 극우 성향의 기독교근본주의자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브레이비크가 주장하는 것과 신나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유럽의 극우파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반이슬람화 이데올로기와 동일함에도 그가 신나치주의 그룹회원이 아니라며 단순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끔찍한 사건 뒤에는 유럽지역에서 널리 퍼져있는 이슬람 증오 감정이 숨어 있다. 이것엔 언론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유럽언론들은 자신들에겐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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