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업 숫자 1만2천개, 미국과 일본의 절반에도 못미쳐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중앙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1995년 1만여개에서 2000년에는 1만2천여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8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숫자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2만5천여개(1987년 기준)와 미국의 3만여개(1991년 기준)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실업률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직업의 가짓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직업을 업종과 업태 등으로 나누면 수천 수백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직업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기자는 모든 직업을 실업(實業)과 허업(虛業)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업(實業), 농업과 제조업 등 만들고 생산하는 직업

▲ 국민일보 2월26일자 3면.

실업은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만들고 생산하는 직업이다. 중고교 때 배웠던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실업은 농업과 어업을 비롯한 1차 산업과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이 주로 해당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허업이다. 3차 산업 즉 이른바 서비스업이다. 기자를 비롯한 언론사 종사자,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간호사, 생활설계사...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요새는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직업을 줄여서 ‘3D’라고 부른다. 의사와 판사란 직업도 대체적으로 남들 놀 때 놀지도 못하는 3D 직종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과(분야)는 '3D 중의 3D'라고 해서 의사들이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실업과 허업 중 어느 것이 더 낫다, 혹은 못하다는 기준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두가지 직업 중 주로 후자인 허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갈수록 실업(實業)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가정과 교육제도부터 시작해서 나라와 경제의 모든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관행이 실업 보다는 허업을 택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유교적 잔재와도 여전히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기자는 25살 때까지는 농사를 짓다, 즉 실업에 종사하다, 25년째 허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빨리 농업이나 임업 등 실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실업이 허업보다 더 존중받아

우리나라 상황과는 반대로,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진국으로 갈수록 허업 보다는 실업을 더 권장하고 실업의 가치를 더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몇 년 전 트럭 운전사들이 전국적인 파업을 벌여 화물차가 단 한 대도 다니지 않을 때 나온 얘기다. 프랑스에서는 근무 년한(경력)이 같은 트럭 운전수가 대학교수 보다 월급을 많이 받고 또 많이 요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교수는 교수라는 직업이 주는 혹은 직업에 따라오는 ‘명예’가 있는데, 트럭 운전사와 비교할 때, 명예를 가진 사람이 월급까지 더 많이 받아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달리 선진국인가?

각 개인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허업을 택할 수도 있고 실업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실업과 허업 모두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규정과 제도뿐만 아니라 관행도 고쳐나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만에 하나 위기가 닥친다면, 기자는 그 원인의 하나가 농업, 어업과 제조업 등 실업을 중요시하지 않고, 궂은 일은 하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들과 ‘허업 중시 사고와 시스템’이 계속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데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해 땀흘린 대가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4년 뒤에는 대졸 출신 초임자들과 비교해 승진 등 인사상의 차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인가? 실업계 고등학교조차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매겨진 서열지상주의, 시험성적 지상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입시 광풍에 내몰리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의 동북 3성 자치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아니면 농업과 제조업 자체가 굴러갈 수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이명박은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실업 종사자 출신

이명박 정부가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실용주의가 진짜 빛을 발휘하려면 허업보다 실업을 더 권장하고 허업보다 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더 우대하는 작업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를 사실상 개조하다시피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개혁이 아니라 혁명에 버금가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 한겨레 2월1일자 33면.

오랫동안 굳어진 ‘사농공상’식 관념과 잔재도 그렇지만,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 자체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실업(實業)보다는 허업(虛業)에 종사하던 사람이 대부분이고, 허업에 맞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공계 출신들이 아니라 인문사회계 출신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기대하는 게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위와 같은 직업 분류 기준으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허업이 아니라 실업(實業)에 종사했던 유일한 대통령이다. 군 출신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허업에 종사한 분들이다.

국회의원 후보도 허업이 아니라 실업(實業) 출신들을 많이 공천해야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때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없는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고 국민총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게 만드는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과거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이 남겨 준 부정적인 유산 때문에 ‘허업 중의 허업’으로 인식되고 있어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기자가 얘기하는 허업 중시 풍조를 획기적으로 바꿔낼 수 있었던 사람이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해한다. 그들이 고졸 출신 그것도 상고 출신들이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상고 출신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다음 달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에서 공천작업이 진행 중이다. 실업(實業)과 허업(虛業)이 조화롭고 균형있게 발전하게 만드는데 정부와 기업 못지않게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각 당에서 허업에 맞는, 허업에 주로 종사해 온 사람들만 공천하지 말고 실업에 종사했던 사람들과 실업에 맞는 이공계 출신들을 많이 공천했으면 하는 것이 기자의 바람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