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성순 칼럼] 2017년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해임 처분 당한 한국방송공사 이사의 해임 취소소송 제1심 판결이 최근 선고되었다. 제1심 판결은 해당 이사가 업무추진비 일부를 부당집행한 사실,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임기 만료 전에 해임될 정도로 이사의 적격을 상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해임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하였음을 이유로 해임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또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언론의 자유의 의미를 함께 고려할 때 한국방송공사 이사의 임기는 원칙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필요가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임기만료 전 해임은 이사로서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근본적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와 같이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로 제한되며, 방송법에서 한국방송공사 이사에 대한 별도의 징계절차나 해임사유를 명시하지 않음은 고도의 신분보장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BS 한국방송 [KBS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컨대 수백만 원 정도의 업무추진비 부당집행이 있다고 하여도 한국방송공사의 이사를 해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임처분이 대통령의 재량권을 일탈하여 위법한가에 대한 판결 결론의 당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회 저명 인사가 금전 집행에 있어 잘못을 저질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갚는 것 이외에 별 다른 책임을 지지 않게 된 결과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공사의 이사는 이사회에서 한국방송공사의 크고 작은 현안들을 논의하고, 업무추진비나 회의비 등을 지급받게 된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업무 대가를 잘못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사의 신분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사의 업무 자체는 잘 수행되고 있을까. 이를 파악하고 정당한 비판을 가하기 위하여 방송법은 이사회 회의를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정보공개법의 취지상 이사회 회의를 기록한 의사록, 속기록 등도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요 사안에 대한 한국방송공사의 의사록, 속기록은 잘 공개되지 않는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것은 더욱 공개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한국방송공사 이사회의 결정을 담은 의사록, 속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는 이미 수차례 법원으로부터 비공개 결정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사회적 논쟁이 첨예한 사안에 대하여 한국방송공사 이사들이 각 어떤 논의를 하여 업무에 충실히 응하는지, 방송법의 취지와 사회 일반의 언론의 자유에 기여하고 있는지는 사후적으로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이번 해임 취소 판결과 기존의 이사회 업무의 공개에 관한 선례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 이사는 돈을 부당하게 썼음에도 웬만해서는 해임되지도 않고, 첨예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했던 업무 영역은 사후적으로도 공개되지 않아 이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사실상 한국방송공사 이사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그 대가의 사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사후 제재는 막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사의 임기가 원칙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고도의 신분보장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면 더욱 투명하게 업무 집행을 공개해야 한다. 사후 제재를 어렵게 하고 신분을 강력하게 보장한다면, 그만큼 시민들의 감시와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고 엄중한 책임을 느끼며 업무를 수행해야 마땅하다.​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자신의 본업을 그대로 유지하며 겸직하는 비상근 형태의 한국방송공사 이사회의 운영이 더욱 투명해지고 적시에 정당한 비판이 가해질 수 있어야 이사회의 직무는 더욱 충실히 수행될 수 있지 않을까. 이사들의 책임 있는 행동과 이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바탕으로 방송법의 취지와 언론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김성순 언론인권센터 정보공개운동본부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67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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