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축구가 득세하는 현대 축구에 세계적으로 190cm가 넘는 '장신 공격수'들이 축구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체코의 얀 콜러가 체코 축구의 중흥을 이끌었고, 세르비아에서는 니콜라 지기치가 간판 공격수로서 지금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 잉글랜드 공격수 피터 크라우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스타급 장신 공격수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0cm 내외의 큰 키를 가졌음에도 수준급의 발재간을 보여주며 헤딩 능력 뿐 아니라 공격수로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신 공격수는 예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 이름을 날린 190cm 장신 명 공격수 김재한을 비롯해 K리그 역대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우성용 등이 대표적인 장신 공격수들입니다. 하지만 김재한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장신 공격수가 크게 빛을 발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점점 템포가 빨라지고 기술이 능한 선수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오히려 장신 공격수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며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최근 울산 현대의 간판 공격수로 떠오르고 있는 선수, 김신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196cm로 국내 공격수 가운데 가장 큰 키를 갖고 있는 김신욱은 '뭔가 부족한 공격수'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 덕에 1월 아시안컵 이후 다시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으며 다음달 1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한일전 명단에도 포함됐습니다.

▲ 김신욱 ⓒ연합뉴스
사실 김신욱은 그저 기대주로 조금 주목받는 정도의 선수였습니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이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자체 평가전에서 비교적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등 나름대로 기대감이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제공권 외에 뚜렷한 장점이 없었던 것이 흠이었고, 특히 체력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공격 자원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김신욱의 발전 가능성을 허정무, 후임 조광래 감독은 주목했고, 소속팀 김호곤 울산 감독 역시 김신욱을 눈여겨보며 꾸준하게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원래 수비수였다 공격수로 변신한 만큼 김 감독은 많은 출전 기회를 통해 김신욱이 스스로 노력해서 공격수로서의 역량을 다듬어나가고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감독들의 기대 덕분이었을까요. 김신욱은 헤딩 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골고루 좋은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가 됐고, 여느 특급 공격수 못지않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컵대회에서 김신욱은 11골을 집어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리그에서는 최근 2경기 연속 골을 뽑아내는 등 5골을 기록해 시즌 16골로 정규리그 득점 1위인 데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16골 가운데서 자신의 장기인 헤딩으로 골을 넣은 게 8골이지만 나머지 8골 역시 발로 넣은 골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만큼 골 감각이 좋아지고, 한층 더욱 날카로운 공격수로 거듭난 것입니다. 헤딩만 잘 한다는 편견도 그러면서 깨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활약상을 눈여겨보고 조광래 감독은 김신욱을 다시 대표팀에 올렸습니다. 1월 아시안컵 대표팀에 발탁됐던 김신욱은 4강 한일전에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위협적인 제공권을 바탕으로 황재원의 골을 간접적으로 도우며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원래 좋은 제공권에다 최근 물오른 득점력과 감각적인 움직임, 발재간 등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조광래 감독은 김신욱에 다시 기회를 주고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부임 이후 김신욱을 비롯해 석현준, 박기동 등 190cm가 넘는 장신 공격수들을 자주 실험해 왔습니다. 장신 공격수가 공격 전술 운영 다양화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타깃형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 덩달아 부단히 움직이면서 일정 수준의 테크닉을 구사해 순도 높은 골결정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장신 공격수 스타일'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면에서 석현준과 박기동은 조 감독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김신욱 역시 잠시 조광래 감독의 눈 밖에 났지만 서서히 기량을 갖춰가면서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김신욱은 이 기회를 살려 꾸준하게 대표팀에서 롱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특히 소속팀에서 후반에 교체 투입돼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기록, 조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박주영, 지동원 등 쟁쟁한 주전 경쟁자들이 많은 만큼 오히려 조커로서의 역할이 김신욱에게는 더욱 요구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조커로 투입해 적재적소에 득점력을 보이고 결정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 낸다면 김신욱은 대형 스트라이커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장신 스트라이커가 제 몫 이상을 다 해준다면 충분히 일반 공격수 이상으로 활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축구에 모처럼 대형 장신 공격수의 탄생을 알릴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곧 '한국판 크라우치, 얀 콜러'의 진정한 탄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키가 크면 축구를 못 한다는 편견을 깨는데도 김신욱의 활약은 꽤 눈길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16일, 강원 FC와의 리그 18라운드에서 왼발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라운드 MVP에 올랐던 그 모습을 앞으로도 자주 보여줄 때, 김신욱은 '한국판 크라우치'가 아닌 당당한 '최고의 스트라이커, 김신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장신 스트라이커, 그러면서 편견을 하나하나 깨나가는 김신욱의 미래는 충분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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