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한 주간 준비한다. 물론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는 안 된다. 일단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나와야 하는데 큰 고민 없이 편곡하고 노래했다가는 바로 칼날 같은 평가가 날아온다. 장혜진의 미스터가 그 예다. 따라서 편곡부터 신경 써야 한다. 편곡을 하고 나면 무대를 만들기 위한 고민에 들어간다. 악기, 조명, 추가 세션 등을 고르고 섭외하고 정렬해야 한다. 의상까지도 준비해야 한다.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와 동시에 노래 연습도 해야 한다. 가사도 외우고 노래도 다양한 스타일로 불러본다. 그렇게 1차경연이 시작된다.

2차 경연은 좀 낫다. 2주간의 기간이 있으니까. 1차경연의 경우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하면 되기 때문에 미리 작곡가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해 놓을 수 있지만, 2차경연은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모르는 노래가 걸릴 수도 있고, 맞지 않는 노래가 걸릴 수도 있다. 고난의 시작이다. 곡이 선택되면 위의 1차경연 때 했던 과정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긴장도는 당연히 1차경연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탈락이라는 투표결과가 도출되는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몇 개월 동안 반복된다. 이건 고문이다.

'나는 가수다'가 대단한 프로그램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슷한 포멧의 예능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 사회적 파장은 지금까지도 강력하다. 비록 음원순위가 최상위에 들지 않더라도 이들의 노래는 분명 모든 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적었거나 혹은 그 진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김범수 씨처럼 얼굴이 중요한 가수가 마침내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날아올랐다. 이 모든 것은 '나는 가수다'의 공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의 격전장인 '나는 가수다'는 출연하는 가수들에게는 악마와 같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출연하면 가수로서 인정받고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너무 힘들고 고된 일정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수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면 제대로 된 무대를 꾸며야 한다. 이건 탈락이냐 아니냐에 상관없는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모든 가수들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었다.

록큰롤대디 임재범은 결국 건강문제로 하차했으며 그 외 수많은 가수들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진검 승부를 위해서는 모든 걸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위를 계속하면 당연히 몸은 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의 명예퇴진 제도는 가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장치'가 된다. 가수들도 자기의 활동을 해야 할진데 몇 개월 동안 자신의 음악이 아닌 남의 노래만을 편곡해서 불러야 한다는 것은 창작하는 가수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특정가수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심은 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명예퇴진하더라도 그 가수의 노래는 MBC를 넘어 전 방송사에서 분명히 더 많이 방송될 것이고 더 많이 들릴 것이다. 따라서 아쉽지만 명예퇴진 제도는 무조건 환영한다. 가수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가수 본인의 음악을 더 많이 듣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가수다'는 새로운 포멧의 프로그램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규칙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이번 명예퇴진 제도를 통해 포멧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줄겠지만 감동이 오래 지속될 준비는 이제 다 된 것 같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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