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극에서도 소외되었던 백제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반가운 드라마입니다. 승리한 장군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장에서 전사한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기대됩니다.

계백의 탄생 비화, 초반 드라마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역사에 뛰어난 장군이라는 기록은 있지만 그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를 통해 구체화된 그의 모습은 역사를 바탕으로 한 픽션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장금이 이야기가 한 줄에서 시작했듯 계백의 이야기 역시 턱없이 부족한 사료 속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그렇기에 드라마를 역사서와 문맥 맞추기식 뜯어보기로 보게 되면 드라마의 재미도 역사의 진정성도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는 드라마이고 드라마는 픽션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역사와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지만)입니다. 이를 알고 감상하면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가 될 듯합니다.

드라마는 계백의 마지막 전투인 황산벌에서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선 백제의 5천 대군과의 혈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0배가 차이 나는 수적 열세에서도 매번 나당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이겼던 계백의 백제군. 그 마지막 다섯 번째 대결을 앞두고 이야기는 그가 태어나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백제의 상황 속으로 들어섭니다.

서동요로 잘 알려진 서동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는 부부의 연을 맺어 백제의 30번째 왕 무왕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적인 신라의 공주를 백제의 왕후로 받들 수는 없다는 사택비로 인해 위제단은 선화와 아들 의자를 암살하기 위한 도발을 수시로 자행합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그들을 구해내는 것은 언제나 백제 최고의 무술가인 무진입니다. 계백의 아버지 무진은 가족을 돌보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천상 장수입니다.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에서 무왕이나 선화와 의자 모두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무진 외에는 없습니다.

무왕으로서도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의 중심에 사택비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최고 귀족의 딸로 무왕의 두 번째 아내인 사택비는 왕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정사암회를 이끄는 사택적적의 딸인 사택비는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왕이 된 무왕을 뒤에서 이끄는 실질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선화와 의자를 없애고 귀족인 자신과 아들 교기를 통해 백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그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누가 자신을 암살하려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택비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으로 인해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은 긴장감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왕마저 무력화시키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적은 다름 아닌 무진입니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그로 인해 사택비는 매번 암살에 실패하고는 합니다. 무왕과 선화, 의자에게는 수호신이지만 사택비에게는 가장 귀찮은 존재가 바로 무진입니다.

과거 무왕의 아내가 되기 전 무진과 연인 사이였던 사실을 끄집어내며 무진에게 읍소를 하기 시작하는 사택비의 계략은 자연스럽게 두터웠던 무왕과 무진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간교함과 추진력에서 그 어느 대장부보다 뛰어난 사택비로 인해 위기에 빠진 무진이 어떻게 계백을 키워내느냐가 초반 드라마의 핵심일 듯합니다.

우선 주목을 끄는 것은 차인표가 열연하는 무진입니다. 계백이라는 신화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 무진의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계백에 대한 당위성이 세워지고 본격적인 계백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무진은 충신으로서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와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으로 강인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이후 계백의 모습 역시 무진과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점에서 무진의 캐릭터 구축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사택비의 아들인 교기가 자신의 어머니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사냥으로 잡은 토끼를 어미의 눈앞에서 칼로 찔러 죽이며 살의를 보이는 장면은 <계백> 중심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선화와 의자가 유사한 성향을 보이듯 부모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설정은 이들의 캐릭터가 얼마나 완벽하게 구축되느냐에 따라 중심인물이 될 자식들의 존재감이 달라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첫 회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사택비였습니다. 사택비의 간교함과 그 어떤 남자들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모습이 드라마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기에 사택비에 대한 관심 여부가 초반 <계백>의 시청률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첫 황산벌 전투가 비주얼이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유도했다면 사택비의 존재감은 극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재미로 다가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택비의 모습은 그녀가 <계백>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선덕여왕>의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초반 분위기는 이후 진행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미달과 사택비를 비교할 수밖에 없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실의 환생이라도 보는 듯한 사택비의 캐릭터는 <선덕여왕>의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계백>에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이런 모습은 반감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선덕여왕>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미실 따라하기는 그저 흉내 내기에 그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눈꼬리를 치켜 올린 화장은 그녀의 캐릭터를 강력하게 만들어주지만 1차원적인 시선끌기는 오히려 캐릭터를 무너트리고 있을 뿐입니다. 차라리 선화와 같은 모습에서 사택비의 간교함이 드러나면 더욱 효과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미실과 더욱 비교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차라리 이런 부분을 차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더욱 같은 시간대에 방송 중인 <무사 백동수>와 대결해야 하는 <계백>으로서는 앞서가는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극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진중함도 필요합니다. '백동수'가 캐주얼과 젊은 배우들을 무기로 젊은 시청자 층을 사로잡고 있는 것과 달리, 그들은 아역을 넘어 중견 배우들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기에 전통적인 사극 시청자들을 위한 장치들이 절실합니다.

초반 분위기를 압도하기 위해 사택비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그녀의 카리스마에 따라 <계백>의 초반 시청률이 결정될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감이 높아 보입니다. 누가 봐도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사택비는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많이 드러난 상황입니다. 이런 약점들을 누르고 사택비만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주변 장치들이 보다 정교해져야 할 것입니다.

신화 속의 인물 같은 계백을 어떻게 형상화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그 시작은 무진 역을 맡은 차인표로 인해 흥미롭게 전개되었지만, 모진 고난의 시기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택비의 간교함과 잔인함은 초반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무기로 자리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역사서에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 계백을 주인공을 하는 드라마인 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논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승자인 신라 위주의 역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신라와 지속적인 대결을 벌이는 백제의 역사는 시종일관 논란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이런 논란은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예상되었던 만큼 얼마나 중심을 잡아가며 계백이라는 인물에 집중하는지가 관건이 될 듯합니다. 시작으로서 <계백>은 그동안 사극에 굶주렸던 이들에게 관심을 받기에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아쉬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시작하는 드라마인 만큼 계백의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는 MBC 사극 특유의 재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계백>이 진정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은 3, 4회가 될 듯합니다.

퓨전 사극이지만 다른 사극들과는 달리 좀 더 기존 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계백>은 가벼운 사극에 싫증이 났던 이들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초반 인기몰이를 할 중요한 캐릭터인 사택비가 미실이 아닌 사택비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면 <계백>의 순항은 의외로 빨리 시작될 듯합니다. 초반 <계백>을 살리는 존재는 사택비임은 명한 사실이니 말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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