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 보도 중 15%가 성차별적 보도라는 모니터링 결과가 나왔다. 총 982건의 보도 중 성차별적인 보도는 150건(15.3%)인 데 반해 성평등적 보도사례는 9건(0.9%)이라는 결과다.

서울YWCA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지난 1월 1일부터 4월 25일까지 네이버 포털 뉴스 검색 기능을 통해 노출된 기사를 대상으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언론보도 모니터링을 진행, 지난달 29일 보고서를 발표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알려진 뒤 보도된 총 982건의 기사 중 성평등적 보도사례는 9건, 성차별적인 보도사례는 150건으로 성차별적인 보도가 성평등적인 보도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이 모니터링을 통해 드러났다.

서울YWCA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발표한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 중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언론보도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발췌

성차별 보도의 경우 피해자 보호, 객관성, 선정성에 따라 분류했다. 피해자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한 기사는 1건으로 MBN <‘n번방 강력대응’ 대통령 지시 다음날에도 초등생에 ‘몸캠’감시>(3/24)다. 해당 기사에는 피해자의 나이, 거주지, 직업 등이 공개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해자 서사에 주목한 보도는, 머니투데이 <‘개발자 꿈꾸던 모범생, 부따 강훈의 이중생활’> (4/16), sbn뉴스 <조주빈, n번방 신상공개 청와대 국민청원, 2,514,456명 참여>(3/24), 국민일보 <“노예작업 팀원 최고대우” 중학생 성착취 로리대장태범수법>(3/31), 인사이트코리아 <그것이 알고싶다 조주빈, 키 크는 수술받고 평소 말투도 부장님같은 느낌>(4/2) 등이다. 해당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조주빈(‘박사방’의 박사)의 대학, 학점, 교우관계, 외모 등에 초점을 맞췄다. 보고서에서는 “이 같은 기사들은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할 위험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표현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만드는 14건의 보도가 있었다. 가해자의 생애, 발언 등에 주목해 ‘악마’, ‘소시오패스’, ‘부적응자’, ‘짐승’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식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일부 개인의 문제로 돌리게 되면 ‘성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은 악마이지만 소비한 사람은 정상’이라는 식의 담론이 형성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제목과 기사 본문에 가해자를 ‘악마’로 칭한 세계일보 <악마의 두 얼굴…‘학보사 기사’ vs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3/22), 테크M <‘박사방 n번방’의 악마들...성범죄자 소굴 될 텔레그램? “메신저는 억울해”>(3/23)와 가해자를 ‘심리적 부적응자’라고 서술한 중앙일보 <단독/조주빈, 1년 뒤 다시 봉사활동 나와 “도청장치 만들자”>(3/24) 등이 관련 사례로 꼽혔다.

서울YWCA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발표한 '2020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 중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언론보도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발췌

디지털 성범죄를 ‘야동’, ‘음란물’로 보는 보도사례는 114건 발견됐다. 불법촬영물을 ‘몰카’로, 성착취물을 ‘음란물’로 표현해 디지털 성범죄를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97회나 언급된 ‘음란물’이라는 용어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욕은 매우 기본적인 욕구라는 전제하에 남성의 성욕을 정당화·자연화 하는 담론 속에서 사용되기에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피해자를 수동적인 인물로 그리는 “고통 속에 사는 피해자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고통”, “씻을 수 없는 대못질”,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등의 표현을 사용한 보도는 8건이다. 성범죄 피해를 회복이 불가능한 수치스러운 일로 묘사해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는 표현이다.

제목에 선정적, 자극적인 내용을 부각한 기사는 5건이다. 문제의식 없이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한 사례다. 머니투데이 <몸에 ‘박사’ 새기고 성노예로…신상 밝힌 회원들, 더 잔인해졌다>(3/21), 한국경제 <‘n번방’ 피해 여성 “협박 후 나체사진 강요…미성년 피해자 더 있을 것>(3/24), 인사이트 <걷지도 못하는 6개월 아기 성착취 영상 유포자 고작 징역 1년 6개월 받았다>(3/24) 등이다.

피해자 이미지나 영상을 사용해 성폭력을 선정적으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남성이 여성을 위협하는 삽화(머니투데이), 여성 가슴이 부각된 사진을 핸드폰 화면에 합성한 사진(머니투데이), 계단 오르는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불법 촬영하는 이미지(머니투데이), 여성이 스스로 옷을 벗는 장면을 불법촬영하는 이미지(인사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모니터링 결과에서 인사이트는 ‘가해자 서사에 주목한 보도’, ‘제목에 선정적, 자극적인 내용을 부각한 보도’, ‘성폭력을 (영상, 이미지) 선정적으로 표현한 보도’에 대표적인 사례로 실렸다.

인사이트 <미성년자 '성착취'하는 n번방에서 잠입취재하던 기자가 가장 고통을 느낀 순간>(3/22), 머니투데이 <'일본 야동' 여배우들, 'n번방' 피해자처럼 착취 당한다>(3/28), 머니투데이 <"성착취 지인능욕...'n번방'과 비슷한방 100개 더 있다"> (3/23)

반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며 구조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드러낸 ‘좋은 보도 사례’는 9건 집계됐다. 이 중 일부 기사들은 인용구로 ‘몰카’, ‘음란물’, ‘야동’과 같은 표현을 쓸 때조차 괄호 안에 ‘불법촬영물’, ‘성착취물’ 등을 표기해 단어 사용으로 발생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기사로 한국기자협회의 <‘n번방’ 국민청원, 언론이 해야 할 3가지>(3/26), 시사저널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3/28), 한겨레 <[폰터뷰]n번방 피해자도 잘한거 없다?...피해자 두 번 죽이는 말>(4/3) 등이 있다.

모니터링을 진행한 서울YWCA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약화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다루는 보도는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에 답하고자 모니터링을 진행했다”며 “긍정적인 것은 성차별 보도의 문제점들에 공감하며,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보도윤리를 고민하는 기사들이 9건 발견되었다는 점”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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