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에 심수봉이 출연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심수봉의 험난한 삶과 그런 고통 속에서 태어난 빼어난 명곡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인 2009년 세상을 떠난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가수가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소사의 죽음은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소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세계 모든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소사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라는 칭호도 받는데, 그녀는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에 맞서다 영구추방당한 아픔을 안고 있다. 가수의 망명이란 우리에게는 참 낯선 일이다.

한국 가요사에도 정권에 저항의 흔적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심수봉은 그 기록에 적혀있지는 않다. 그러나 심수봉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항가수의 대명사격인 김민기보다도 더 탄압을 받았을 수도 있다. 대통령 안가의 술자리에 불려갔던 것이 그 억압의 시작이었다. 유신의 몰락과 5공의 분기점이 되는 1979년 10월 26일의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것이 심수봉에게는 일생일대의 악몽의 시작이었다.

노래가 어때서가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심수봉은 가수활동을 정지당했다. 방송활동은 막혀 있었지만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심수봉의 작가 활동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만이 심수봉의 유일한 돌파구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심수봉을 괴롭히던 불운의 사신은 그녀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1984년 천신만고 끝에 방송에 출연해 부른 신곡 무궁화는 다시 군부정권의 눈 밖에 났고, 그녀의 활동은 다시 묶이게 됐다.

그 노래는 바로 무궁화다. 심수봉의 많은 명곡 중에 하나인 이 노래는 “포기하면 안 된다. 눈물 없인 피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가사가 국민을 선동한다는 이유를 들어 다시 심수봉을 깊은 침묵의 감옥에 가둔 것이다. 이 노래에 박정희의 의지가 담겨졌다는 말도 떠돌고 있기도 한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80년 궁정동의 그 때 그 자리에 있게 될 만큼 기막힌 운명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그런 배경 없이 가사에 충실해 이 노래를 듣자면 그때건 언제든지 불의를 저지르는 정권이라면 두려움도 가질 만해 보인다.

그렇지만 국화인 무궁화란 제목을 단 이 노래를 금지시킨 것이 참 어처구니없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에서 근대를 맞이했다. 일제의 패망으로 나라를 되찾기는 했지만 주체적인 해방이 아니었기에 나라와 백성은 둘로 갈라져야 했고,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분단이 남북에 미친 영향은 부정적인 것뿐이다. 지금도 남쪽은 잘 살게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무궁화의 마지막 가사가 절실할 뿐이다.

이쯤에서 왜 심수봉을 보면서, 무궁화를 들으면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가 떠오르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소사는 망명을 끝내고자 목숨을 걸고 1982년 조국 아르헨티나로 입국을 강행했다. 군부독재의 위협에 맞선 소사가 귀국해 연 공연에서 맨 처음 부른 노래가 바로 Gracias a la vida이다. 얼마 후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는 무너졌고, 무궁화를 짓밟은 5공 정권도 87년 국민대항쟁에 꺾였다.

심수봉이 비록 소사처럼 저항 운동가는 아니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무궁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저항을 담지 않았다고 했지만 국민이건 개인이건 이 노래는 아주 숙연한 의미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심수봉 자신도 눈물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끝가지 포기하지 않아 오늘을 맞은 것처럼 무궁화는 짓밟혔어도 다시 피어났다. 그때 그 사람, 비나리, 사랑밖에 난 몰라 등처럼 널리 불리는 노래는 아니지만 심수봉을 좋아한다면 이 노래에 미칠 듯이 빠져든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 가요사에 가장 신비한 목소리와 명곡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심수봉은 작가 역량이 최고조일 때에 손발이 묶였다. 그 아픔과 절망을 남이 어떻게 감히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생각하고 썼건 아니면 정말로 다른 누구를 향한 노래이건 무궁화는 그 절망에 지지 않으려던 심수봉의 결연함은 충분히 읽혀진다. 놀러와도 슬쩍 피해간 1절 끝부분 가사는 이렇다. “참으면 이긴다. 목숨을 버리면 얻는다”

가요를 만드는 평범한 가수에게 목숨을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처절한 심정을 강요한 그 시절의 절망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놀러와에 출연해 무궁화에 얽힌 사연을 눈물로 토로하는 심수봉을 보면서 순간 아찔했다. 과연 그 시대와 지금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술과 담배란 단어만으로 19금이라는 이름의 금지곡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런 반시대적 상황이 단순히 아이돌 팬덤의 극성으로 비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또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역사는 현재를 얼마나 부끄럽게 기록할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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