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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의인 백도명 서울대 교수[지역에서 본 세상]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 승인 2011.07.25 10:00

1.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것들의 정체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것들'의 정체를 두고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사업은 물론 옛날 지율스님이 겪어야 했던 천성산 터널 관통에 대해 나왔던 '전문가라는 것들'의 얘기나 행동은 그야말로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미심쩍어 할 만한 대목인데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아무 문제도 없다고 읊조리는 구실, 그렇게 해서 한 쪽에서 제기되는 민원을 깔아뭉개고 사업을 진행시키게 하는 그런 노릇을 해 왔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싼 논란에서는 또 어땠는가. 나름 객관성을 갖췄다는 '전문가라는 것들'이 내놓은 연구(조사) 용역 결과를 보면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국토해양부에서 한 용역은 국토해양부에 유리하게 나오고 경북도나 경남도 또는 부산시가 하면 다 용역을 발주한 기관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 용역을 받아 돈을 벌기 위해 용역을 주는 기관이나 기업의 입맛에 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지역 한 대학의 어떤 교수는 전문가를 일러 "용역을 발주한 기관의 입맛에 맞게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전문'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이런 '전문가라는 것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서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기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마저도 몇 푼 돈에 팔아먹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도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 2008년 5월30일 주민투표 개표 현장. 오른쪽 단상에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황철곤 당시 시장. ⓒ경남도민일보
2. 3년 8개월 동안 눈물겹게 투쟁한 수정 주민들

이렇듯 우리 사회 '전문가라는 것들'에 절망하고 있는 터에 지난 6월 2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에서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을 봤다. 

이날 수정 사람들은 마을 잔치를 열었다. 3년 하고도 여덟 달을 끌어온 'STX 조선기자재 공장 수정만 매립지 진입 저지 투쟁'에서 '일단' 승리한 기념으로 펼쳐진 이날 잔치는, 그동안 자기들을 지원해 준 이들을 모시고 고맙다는 뜻을 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수정 마을 한가운데 매립된 수정만이 있고, STX중공업이 여기 공장을 세우겠다는 데 대해 주민들은 2007년 10월부터 3년 넘게 반대 투쟁을 벌여왔다. 

결국 2011년 5월 16일 창원시가 "STX가 수정만 매립지 공장 진입 포기 의사 표명"을 표명하면서 일단 끝났지만 그이들의 반대 투쟁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포기 의사'를 STX가 몸소 밝히지 않고 창원시가 대리한 데 대해 주민들은 계속 불안해 하고 있다. STX가 언제든지 "우리가 포기했다고 직접 밝힌 적은 없다"면서 백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정만 매립지 소유권은 여전히 STX에게 있기도 하다.)

당시 황철곤 시장 아래 있던 옛 마산시(지금은 창원시로 통합)와 STX라는 거대 기업이 결합해 수정 주민들을 눈물겹게 만들었다. 행정 권력과 자본 권력의 결합은 주민들 삶을 통째 뒤흔들어 놓는 데 충분히 '막강'했다.

STX조선기자재 공장 진입에 찬성하지 않으면 횟집 주인 같은 자영업자에게는 하수 처리 시설 따위를 문제 삼아 괴롭혔다. 돼지 따위를 키우는 이들에게는 축산 폐수를 갖고 을러댔다. 

심지어 마산보건소 수정 진료소장은 반대도 아니고 다만 "STX가 들어서 마을이 갈라지게 됐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표적 감사와 함께 징계를 받고 30년 일한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소음을 내는 이 공장이 들어서려는 데는 어디 외딴 구석이 아니었다. 예정지는 중학교와 담장 하나 사이밖에 안 되고 마을과는 왕복 2차로 도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음 시설조차 제대로 하도록 돼 있지 않았다.  

돈도 풀었다. 찬성 주민에게는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 돈을 줬다. 찬성 주민에게 행정 편의를 주고 반대 주민은 그러지 않았던 것은 말 안해도 다 아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마을을 가르고 주민을 서로 불화하게 만들었다.  

   
▲ 2009년 6월8일 수정만 매립지 산업단지 승인에 항의하기 위해 경남도청에 진입하려고 하는 수정 주민들. 할머니들이 울부짖으며 윗옷을 벗어던졌다. ⓒ경남도민일보
투표 결과 조작도 했다. 금력과 행정력을 동원한 가운데 2009년 5월 30일 주민 투표가 치러진 것이다. 찬성 주민은 이를 보이콧하고 서울 STX그룹 본사 항의 집회를 하러 떠났다. 황철곤 시장을 비롯해 마산시 공무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진 것이었다. 

전체 유권자 1150명 가운데 49.6% 남짓한 570명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절반에 못 미쳤으므로 개표도 않고 부결돼야 했다. 개표를 한 결과 찬성은 520명뿐이었으므로 전체의 45% 수준이다. 과반수 동의가 안 됐으니 당연히 부결이었다.

그런데도 황철곤  시장은 그 날 그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전체 주민 동의'라 선언했다. 이런 엉터리가 없다. 게다가 STX그룹은 이를 바탕삼아 6월 5일 마산시의 선언 등을 '존중한다'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수정 마을 주민들은 이런 사면초가 속에서도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그 순간 생활 터전이 풍비박산나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싸울 대상도 많았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행정기관에 맞서 동네 할머니들이 울부짖으며 윗옷을 벗어던지고 경남도청에 들어가는 등 끈질기게 싸웠고, 지역 사회의 뜻있는 단체와 사람들도 뒤늦게나마 지원에 나섰다.  

   
▲ 6월25일 수정 마을 잔치에서 자리에 앉아 있는 백도명(앉은 이 가운데 오른쪽에서 세 번째) 교수
3. 주민 감사패 받은 백도명이라는 전문가

수정 마을 주민들은 잔치를 벌이면서 그동안 자기들을 지원해 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는데 거기에 백도명 교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백 교수는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으면서 인사말을 했다.

백 교수의 말을 새겨듣지는 않았지만 대충 기억해 보면 이랬던 것 같다. "불러 줘서 고맙다. 함께 해서 보람스러웠다. 자랑스럽다." 특별하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연구실'보다는 '현장'을 중히 여긴다는 느낌은 줬다.

나중에 한 번 살펴봤더니 백 교수는 지역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수정만 매립지 산업단지 조성 사업 현장 실사에 나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2009년 3월 18일 천주교 마산교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수정만 STX 유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환경영향평가 항목 설정이 잘못됐으며 이를 바로잡으려면 어떤 틀에서 대안을 설정해야 하는지를 발표했던 것이다.

이는 수정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두 달 가량 뒤인 5월 6일 수정만 STX조선기자재공장 유치문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경남도의 지방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개최에 맞춰 "'수정일반산업단지계획'을 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첫째 근거가 백도명 교수 발표였다.

"(수정만 매립지가) 조선기자재공장 부지로서 부적합하고 따라서 새로운 도시계획 수립이 타당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 "환경 악화를 기정 사실로 하고 이주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과 함께 꼽혔다.

백 교수는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나서기도 했다. 같은 해 6월 29일 서울 남대문로 STX그룹 본사 앞 강덕수 회장 면담을 요청하는 주민 항의 농성장이었다.  

"환경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오염자 부담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 "STX 사장실과 마산시장 주거지를 수정만 매립지에 두면 이 문제를 가장 쉽고 확실하게 풀 수 있다." 구질구질하게 숫자 따위나 늘어놓는 이른바 전문가들과는 자세부터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백 교수가 주민들의 승리에 작지 않게 이바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주민 편에 서면 그 맞은편에 있는 기업이나 기관과는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그쪽에서 나오는 용역은 맡을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른 수익도 생기지 않는다.

4. 삼성전자 백혈병 인정 판결  배경에도 백도명이 있었다

어쨌거나 백 교수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의 삼성전자 백혈병 인정 판결에서 그이를 다시 봤다. 7월2일치 <시사인> 198호에 그이가 나온 것이다.

백도명 교수는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기사를 보면 백 교수는 2009년 삼성전자·하이닉스·엠코코리아 반도체 3사가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맡긴 용역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을 진행하는 책임자였다.

역학 조사 결과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재료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나왔다. 백혈병 피해자들은 재판부를 통해 백 교수에게 '보고서 전문 제출'을 요구했다. 삼성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제출을 반대했다.

게다가 삼성은 백 교수에게 두 차례나 공문을 보냈다. "보고서를 공개한다거나 해서 (기업 비밀 보장 약정) 계약 사항을 위반하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백 교수는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제조 노하우 등 영업 비밀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물질을 쓰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 안전 보건과관련한 정보는 영업 비밀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시사인' 198호 30~31쪽에 나온 백도명 교수 인터뷰 기사.
정말 엄청난 인물이다. 아마도, 이제 백도명 교수는 삼성전자는 물론 그 비슷한 기업으로부터는 역학 조사 자문 같은 용역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공개했다. 

게다가 삼성 백혈병과 관련한 논문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전체 반도체 공정의 역학조사에 포함된 사람은 1995년 재직자부터이다. 그 이전에 근무한 사람들은 모두 빠져 있다. 

또 백혈병 종사자의 건강 상태 비교 대상을 일반 국민으로 삼아 백혈등 발생 비율이 낮다고 결론을 냈다. 기업은 건강한 근로자를 기본적으로 채용하기에 일반 국민보다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 이른바 '건강 노동자 효과'가 발생해 사망 위험도가 낮아지는 만큼 일반 국민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런 역학 조사의 한계 등을 누군가는 다시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취지에서 국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이건희 선수는 이제 큰일났다. 

용역 발주 기관의 입맛에 맞게 결과를 내놓은 데 '전문' 역량을 갖춘, 이른바 전문가라는 것들은 모두 영혼이 없는 허깨비일 따름이다. 백도명 교수 같은 이런 전문가라야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년 경남도민일보 입사. 1998년 잡문집 <따지고 뒤집기의 즐거움과 고달픔>, 1998년 공동시집 <사람 목숨보다 값진>, 2008년 <습지와 인간-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 펴냄. 2011년 현재 경남도민일보 시민사회부 부장 직무대리.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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