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7개 정부부처 합동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 22일 발표됐다. 국내 미디어 산업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플랫폼 규제완화, 콘텐츠 투자확대, 1인 미디어 육성 방안 등이 담겼다. "한국판 넷플릭스 5개 만들겠다"는 정부 선언이 이번 방안의 목적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각안들을 살펴보면 미디어 산업 경쟁력의 근간인 국내 콘텐츠 산업 진흥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통채널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완화와 1인 미디어 육성방안 정도가 중점적으로 다뤄질 뿐 국내에서 주로 유통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방송산업에 대한 고민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개 기업이 연 10조원 가량의 콘텐츠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정부가 연 2~3000억원의 펀드형태 투자를 약속한다고 해도 이를 실현 가능한 중장기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사업자들은 '정부가 방송콘텐츠 산업을 방치한 채 행정편의적 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내 주요방송사 소속 정책담당자 3인에게 이번 정부 방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미디어 공적 영역, 지원·육성 없으면 쇠퇴한다"

A 방송사 관계자는 "놀이공원은 입장료를 받아 관리를 잘하지만 일반공원은 잔디가 비어도,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어도 예산이 없으면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비유했다. 국내 OTT가 국내 콘텐츠 생산자들이 만든 제작물이 올라타는 구조이고, 방송산업 전반의 재정기반이 취약해져가는 상황에서 OTT 중심의 산업 재편 시 미디어 시장 공적 영역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A 관계자는 "넷플릭스 보고 5.18 기념식을 중계하라고, 재난방송을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글로벌 OTT의 드라마·예능 '편식'이 두드러져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국내 방송이 공적 기능을 많이 수행하기 때문"이라며 "방송산업이 벼랑으로 떨어질 위기에 봉착해있는데 정부는 '무관심 주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콘텐츠 생산 역량의 성장은 방송산업의 광고재원 기반을 바탕으로 이뤄져 왔다. 1970년대 해외 콘텐츠를 수입해 방송을 꾸리던 방송사는 80년대 이후 풍부한 광고재원을 바탕으로 콘텐츠 자생능력을 키워 현재에 이르렀다. 아울러 송출의무 등에 따라 방송에는 공공성, 지역성, 다양성 등 공적기능 수행이라는 역할이 부여돼 왔다. 그런데 방송·통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글로벌 OTT의 출현 등 미디어시장 경쟁이 다각화·가속화되면서 방송산업이 쇠퇴해가는 현재, 미디어 공적가치를 담보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A 관계자는 "콘텐츠 생산과 고용이라는 국가경제 차원에서 보더라도 공적 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살려야 제작, 고용, 한류, 외주제작사와의 공생 등의 면에서 유리한데, 지금 정부의 발표는 플랫폼 산업에만 관심이 편식되어 있는 인상을 받는다"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국가적 문화 생태계의 위기를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관계자는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산업 보호·지원 방안 중 하나로 유럽에서 시행 중인 글로벌 OTT 등에 대한 디지털세 부과를 언급했다. A 관계자는 "큰 틀에서 글로벌 OTT에 대해서도 너무 무관심하다. 유럽은 왜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하겠나"라며 "지원방안에는 다양한 안이 있겠지만 예산이 쌓이면 기금 등의 방법 등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 콘텐츠가 있어야 유통도 할 것 아닌가"

B 방송사 관계자는 "넷플릭스, 유트브 등에 대응해 디지털 미디어 상태계를 발전시킨다면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자는 이를 위한 가장 큰 교두보, 전략적 자산인데 이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며 "공무원들의 사업 나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탁상공론"이라고 총평했다. 규제완화, 업무계획 수립 수준에서 관련 내용이 정리됐을 뿐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대한 위기의식과 고민이 없다는 비판이다.

B 관계자는 "디지털 미디어를 발전시키려면 국가 콘텐츠를 진흥하고 만들어진 게 있어야 유통할 것이 아닌가"라며 "정작 국내에서 드라마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주체들은 무너져 가는데, 시장에 대한 기초적 데이터를 가지고 국가 정책을 수립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일반PP 등 국내 주요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18년 128편, 2019년 122편 등으로 줄어가고 있다. 제작비 회수나 수익창출이 어려운 시장구조가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정부는 2024년까지 1조원 이상 규모의 콘테츠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제작과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OTT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B관계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평가했다. B관계자는 "1년에 2000억, 그중 1000억은 보증지원일 텐데, 이런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난 한 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600편을 만들었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콘텐츠에 18조원을, 애플은 7조원 가량을 투자했다.

B 관계자는 "투자는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지상파·유료방송 등이 서로 간 합리적 경쟁이 되거나, 정당한 대가들이 지불될 수 있는 시장구조가 아니지 않나. 투자를 해도 회수가 안 되는 시장이 만들어져 있다"며 "돈을 들여 효과를 볼 수 없다면 시장구조를 건드려야 하는데, 과연 이 계획이 이런 상황에 맞는지,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B 관계자는 보호·지원 방안으로 유럽연합의 이른바 '넷플릭스 쿼터제' 등을 언급했다. 유럽연합은 글로벌 OTT에 대응해 주문형비디오 사업자에 유럽 제작영상 30% 편성을 적용하고 있다. B관계자는 "국내 국민에게 노출되는 콘텐츠가 20% 이하로 떨어지면 그 나라 미디어 산업은 몰락한다. 해외에서 유료채널을 통해 해외콘텐츠가 들어와도 20% 이상은 자국 콘텐츠를 노출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는 이유"라며 "가입자 수, 국내 콘텐츠 비율 등 넷플릭스 관련 정보는 알 수도 없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B 관계자는 국내 미디어 공적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내놓을 수 있다고 했다. 예컨대 국내 미디어사 개별 경쟁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더라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시장에 내놓은 국내 OTT서비스를 하나의 브랜드 OTT로 묶는 작업을 정부가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B관계자는 "프랑스의 경우 홀딩스 체제이긴 하지만 프랑스텔레비전, INA(프랑스시청각연구소), 프랑스라디오 등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공적섹터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다. 영국은 BBC, ITV, 채널4·5를 다 묶어 '브릿박스'(BritBox, 영국 수출용 OTT)로 해외 마케팅 중"이라고 했다. '한국판 넷플릭스 5개'를 목표로 설정한 한국정부의 정책방향과는 차이가 있다.

범정부 합동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기본방향

"정부 1인 미디어 육성안, '글로벌 경쟁력 강화' 취지에 부합하나"

C 방송사 관계자는 미디어 콘텐츠 산업과 플랫폼 사업의 유기적 관계 설정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없다는 지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정부 발표의 모순점 중 하나로 1인 미디어 육성 방안을 꼽았다.

C 관계자는 "1인 미디어 창작자 육성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지원책은 정책 안에서 모순"이라며 "1인 미디어에 대한 지원이 들어가면 한국의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유튜브로 달려갈 것이다. 정부가 지원해 유튜브를 키워주는 셈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C관계자는 "1인 미디어에 대한 생각도 구시대적이다. 예전 같이 1인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게 1인 미디어가 아니다"라며 "각 방송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만 봐도 몇 십명이 달라 붙어서 만드는 이른바 '숏폼'(short-form) 콘텐츠"라고 덧붙였다.

C 관계자 역시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는 점을 비판했다. C관계자는 "OTT 등 플랫폼을 키우기 위한 콘텐츠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겉핥기' 수준"이라며 "정부가 이젠 방송사업자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라고 말했다.

C 관계자는 "한국 방송시장은 내수 시장성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수기반이 탄탄해야 해외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진출을 시도하고 할 텐데, 지상파, 종편, CJ 등에서 드라마를 해도 그중 1~2개 정도만 근근히 먹고사는 수준의 시장"이라며 "그렇다면 글로벌 정책 계획이 더욱 촘촘하게 이루어져야 할 텐데 각 개별사들이 알아서 하라는 차원의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C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기업이고, OTT 성장의 관건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있다"며 "우리나라 OTT를 보면 방송콘텐츠를 디지털화 해 제공하고 있는데, 콘텐츠 산업에 대한 육성책 없이 미디어 산업 경쟁력을 갖게 한다는 건 모순"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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