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한 달 간의 대리운전기사 체험을 바탕으로 '플랫폼 노동자 경력증명서 발급법'을 추진한다고 밝혀 긍정적 여론이 일고 있지만, 정작 플랫폼 노동 현장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경력증명서 발급의 실효성을 이해할 수 없어 현장에 대한 숙지 없이 졸속 법안을 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경력증명서 발급법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배달의 민족'(배민) '우버'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경력증명서, 재직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조 의원은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보험 가입 현실화, 전기 오토바이 예산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사진=연합뉴스)

조 의원은 "친기업, 친서민이 공존하는 경제정책을 반드시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플랫폼 경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도 법과 제도, 플랫폼 경제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전환될지에 대한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 의원은 "플랫폼 경제의 또 하나의 당면은 플랫폼 노동"이라며 "결국 많은 노동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떠나 플랫폼 노동으로 흐를 것임에도 우리사회에서는 플랫폼 노동이 '노동'인지, '자영업'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플랫폼 경제가 어떻게 친기업, 친서민을 달성하는 경제가 될 수 있을지 제안 드리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대리기사 1명과 대림오토바이 관계자, 차량 렌트·관리회사 'CAR123제스퍼' 관계자 등이 함께했다.

언론 등지에서는 조 의원의 1호 법안이 기존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난 법안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 경제 노사가 모두 참여해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 플랫폼 기업의 혁신 성장을 도모하는 법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황당하다', '쌩뚱맞다'는 반응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23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조 의원 선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경력증명서 떼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이렇게 황당한 법안이 나오는 것 같다"며 "배달의민족에서 일했다는 증명서는 지금도 뗄 수 있다"고 했다. 배민 센터에 가면 계약관계증명서를 뗄 수 있고, 배민과 같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더라도 앱 접속 시 작업 이력을 전부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위원장은 "오히려 경력증명 같은 경우는 큰 필요가 없고, 지금 더 중요한 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의 데이터 접근권"이라며 "예를 들어 산재사고가 발생하거나, 렌트비·리스비 차감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회사가 앱 접속을 막아버려 라이더들이 자기가 일한 내역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플랫폼 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당장 라이더들로부터 "경력증명서를 어디에 쓰냐"는 반문이 나온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무미제공 사실확인서 같은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건 경력증명서와는 별개"라며 "이 법안이 무슨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경력이 좋아 연차가 보장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한 달 대리기사 경험기 영상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조정훈의 국회전환')

박 위원장은 조 의원이 전기오토바이 예산지원을 추진한다며 대림오토바이 등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 자리에 선 것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박 위원장은 전기오토바이의 경우 배터리 등 기술적 문제와 15kg에 달하는 무게 문제 등으로 라이더들이 기피하고 있는 현장상황을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라이더들은 전기오토바이를 '끔찍하다'고 얘기한다"며 "이런 상황을 조합원 10명 정도가 인터뷰해 대림 측에 전달한 적도 있었다. 라이더들 중 전기오토바이로 배달대행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전기오토바이 보급이 본격화되면 정부보조금을 노린 사재기 판매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위원장은 "전기오토바이를 사면 시에서 보조금을 준다. 그래서 총판 같은 곳에서 사재기를 해 가격을 좀 올려 판다"며 "보조금이 들어오니 중국에서 들여오는 오토바이 값보다 좀 더 비싸게 가격을 책정해 파는 문제가 있다. 정부에서 실태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라이더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기자회견장에는 플랫폼 산업 노측도, 사측도 없었다. 여기서 얘기하는 노사라는 것은 오토바이 대여 사업 등을 통해 이윤을 얻는 서브적 산업의 인프라 기업이고, 심지어 대리기사의 사측도 없다"며 "배달산업의 노사는 없는 것인데, 그것을 노사라고 해서 1호 법안으로 내세우면 플랫폼 노동 문제가 우스워진다"고 비판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역시 조 의원 법안에 대해 "현장에서는 쌩뚱맞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저도 왜 플랫폼 노동자 경력증명서 발급 법안이 발의됐는지 아직까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산재사고나 특수한 경우에 플랫폼 노동자들의 정보접근이 제한돼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안이라면 모르지만 경력증명서 발급만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일한 기록이 전산에 전부 남는다는 점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노동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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