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출간 소식이 알려진 지난 주말, 언론은 회고록에 실린 내용을 보도하기 바빴다. 특히 조선일보는 21일 회고록을 사전 입수했다며 총 9개의 단독보도를 냈다. 한반도 정세를 흔들 수 있는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게 옳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22일 존 볼턴의 회고록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해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하는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위”라는 입장문을 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한국과 미국,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으로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간 협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실장은 이같은 입장을 21일 저녁 미국 NSC에 전달했으며, 미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 요청했다.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백악관 회고록'은 23일(현지시각) 공식 출간될 예정이다. 존 볼턴의 회고록 출간 소식이 알려진 지난 주말, 언론은 앞다퉈 회고록에 실린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일 볼턴 회고록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해 다룬 기사에서 “2년 전 요란하게 시작됐지만 얼마 못 가 멈춰선 미·북 비핵화 외교를 둘러싸고 소문으로 떠돌던 민감한 의혹들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 거론되면서 논란이 확산할 조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존 볼턴의 회고록 내용을 기초로 총 9개의 단독보도를 21일 냈다.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다음날인 21일 조선일보는 볼턴의 회고록을 사전 입수했다며 총 9개의 단독보도를 냈다. 모두 회고록 내용을 그대로 옮긴 기사들이다. 첫 단독보도 <“트럼프도 김정은도 판문점 ‘文의 동행’ 원치 않았다”>에서는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앞에서 이뤄진 남·북·미 3자 정상의 만남에 대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다”는 존 볼턴의 주장을 다뤘다.

조선일보가 전한 존 볼턴의 회고록에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나눈 대화가 주로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노딜 이후 자신이 강하게 나갔던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계획된 만찬을 취소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더이상 북한의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 중 누구 책상 위에 더 큰 핵단추가 있는지 비교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 정상 간의 친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실수담 역시 기사화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을 직접 언급한 내용으로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 핫라인’ 전화기는 조선노동당 본부에 있고 김정은은 전혀 거기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트럼프 ‘한국 방위비 부담금’ 미군철수로 위협하라 지시했다” 등이다,

조선일보의 단독보도는 22일 자 1면과 3면에 도배됐다. 1면에는 미·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종전 선언 추진은 한국의 아이디어였다는 볼턴의 주장이 담겼다. 3면에는 판문점 회동 당시 북미 정상이 문 대통령의 동행을 원치 않았고,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 핫라인 작동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으며, 하노이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북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 내용이 실렸다.

22일자 조선일보 '북한 한반도 정세' 3면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볼턴의 일방적이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비판적 시각 없이 발췌해 보도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정치적 지향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췌해 보도한 것이다. 언론사가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주장을 강화할 때 유명한 사람이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책·발언을 인용 보도하는데, 이는 주장에 책임지지 않는 언론의 면피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최 교수는 “언론은 기사가 미칠 파장을 고민해 보도해야 하지만 (이번 조선일보 기사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언론의 사명을 지키지 않았다. 볼턴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면 독자들은 이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방적 주장을 보도할 때는 반대 의견을 가진 미 행정부 혹은 청와대 담당자 등의 입장을 비교해 써줘야 독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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