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명사찰 투어가 끝나는 모양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이번 주 내 국회 복귀 가능성을 내비쳤다.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지만, 국회 상황을 방기할 수는 없으니 상임위 내에서 투쟁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 계획대로라면 이번 주 내에 미래통합당은 현재까지 배분되지 않은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게 될 것이다. 또 기존에 국회의장이 임의로 배정했던 상임위에 대한 사보임 역시 이뤄질 걸로 보인다. 이로써 상임위의 정상적 구성은 가능하게 됐지만 역시 상임위원장이 문제다. 주호영 원내대표 주장대로면 18개 상임위원장을 전부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것은 부담이다. 추가 협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미래통합당이 제출한 상임위원 명단을 토대로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을 강제 선출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미래통합당을 코너로 몰아 더 강경한 입장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야당에 배분하기로 한 상임위원장을 미선출한 상태로 국회 운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경우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결국 안건의 의결 절차에 위원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간 벌기’에 그치는 안이 될 뿐이다. 결국 추가 협상 없는 18대 0이냐, 협상을 통한 11대 7이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인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법사위원장을 갖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미래통합당 입장에서 11대 7이란 구도는 나쁘지 않다. 의석수 비율대로 하면 12대 6이 맞다는 주장도 있고, ‘7’에는 이른바 ‘알짜’로 불리는 상임위가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상임위원장직만으로는 뭔가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법사위원장을 누가 하든 법안 처리나 지역구 예산 배분에서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의원이 유리하다는 실익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내에도 이 점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없는 게 아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손 보는 개혁에 합의한다면 법사위원장을 가져야 할 ‘메리트’는 사라진다. 법사위의 일반 상임위화를 전제로 11대 7의 상임위 배분에 나서는 게 어떤 기준을 놓고 봐도 미래통합당에 이익이다. 그런데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를 거부하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는 ‘18 대 0’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성원 의원 페이스북)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구성을 살펴봐야 한다. 이 대목에선 2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초재선 비율이 높은데 이들이 강경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계파 구도의 해체로 상임위원장 후보군으로 볼 수 있는 3선 이상 중진들의 지도력이 붕괴한 상태라는 거다.

특히 다수가 비례대표인 초선들의 활약이 눈부신 것은 지난 총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공천이 이뤄졌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황교안 당시 대표와 미래한국당 간의 갈등 구조 속에서 합리적 색채의 인물들보다는 편향돼있거나 정치 관련 경험이 없는 인물이 공천됐다. 이게 강경한 입장의 목소리 큰 일부 의원이 다른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으면 대권주자 기준으로 뭉친 내부 계파의 ‘좌장’들이 이들을 통제하겠으나 지금 미래통합당은 그럴 수 있는 상황조차 못 된다. 결국 상임위원장을 누가 하게 되는지 문제에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강경한 목소리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추대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지도부나 중진의 의사에 따라 비대위가 구성됐다기 보다는 초재선 의원들이 최종 인준하는 형태였다.

이 점에 더해 짚어볼 것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입장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역시 ‘18대 0’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속리산 법주사에 갔을 때에도 같은 취지의 조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대중적 파괴력을 가진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당내 기반이 허약한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앞서 초재선 의원들의 여론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캐릭터’를 고려할 때, 본심도 ‘18대 0’에 가깝다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일 듯 하다.

‘18대 0’의 명분은 앞으로 생기는 국정운영상의 여러 문제에 대한 여당의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11대 7’의 구도에서는 이게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11대 7’의 실익을 포기하고 ‘행정-입법 독재’ 프레임을 극대화 하고자하는 이유는 뭘까? 결국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편의성을 추구하겠다는 심리 아닐까 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초기부터 대선 관련 언급을 해왔는데 ‘18대 0’의 주장은 이 구상의 일환 아니겠냐는 거다.

‘11대 7’의 포기는 미래통합당 내부 논리로만 보면 더 큰 이익을 위해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탐소실(?)의 결단일 수 있다. 하지만 입법부 전체로 보자면 합리적 국회 운영을 포기하고 내부 정치와 대선을 향한 여론전에 방점을 찍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과연 이런 행태를 ‘협치’의 문제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보다는 민생이냐 정쟁이냐의 고전적 틀을 적용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효과적일 것이냐의 논란은 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3차 추경 논의는 어쨌든 시급하다. 모든 걸 떠나서 이 대목에서 여야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를 전제로 한 상임위원장 ‘11대 7’ 배분을 대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 등 새롭게 쟁점을 만들 만한 사안은 최대한 거론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 여당 대표 출신이기도 한 법무부 장관을 국회에 불러 호통치는 모습까지 굳이 연출할 필요가 있는가? 방향도 그렇지만 수단에 있어서도 적절한지 의문이다. 국정의 최종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정부 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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