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지난 14일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등의 대중가요를 청소년 유해음반으로 지정했다. 이를 두고 당장 비스트 팬덤이 발끈하고 나서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주장할 정도로 분기탱천해 있다. 요즘 아이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대중들도 아이돌 팬덤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누가 봐도 여성가족부의 심의 기준이 과잉을 넘어 병적으로 보일 정도라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스트의 경우, 가사 중에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애’라는 부분이 청소년들에게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의 유해판정이 시기를 놓쳐도 한참을 놓친 뒷북행정이라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가 된 비스트의 음반은 이미 6월에 활동을 마쳤다.

만일 이 판정이 활동 초기에 이뤄진 것이라면 실제로 비스트는 대단히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여성가족부의 유해 음반 판정을 받게 될 경우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직접 음반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청소년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이돌 팬덤은 사고 싶어도 음반을 사지 못하게 된다. 기획사나 팬덤 모두 심혈을 기울이는 순위 프로그램 특히 뮤직뱅크를 기준으로 순위가 음반판매에 의해 갈리는 경우가 심화되고 있다. 아이돌 팬덤에게 자기 그룹이 1위를 하냐 못하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어쩌면 기획사의 마케팅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치열할지도 모를 정도다. 아마도 비스트 활동 초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논란의 크기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미 활동이 끝난 음반에 대해서 유해판정이 내려진 것이라 실질적인 음반 판매에 지장을 준 것 아니지만 가수 자신들이나 팬덤이 애지중지하는 정규앨범 1집에 대해 가해진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기에 반발은 당연하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에 여성가족부의 처분이 시기를 놓친 뒷북행정이란 점도 불쾌하다. 아무런 실효도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기 할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셈이다. 정말 가요가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유해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빠르고 철저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뒷북이나 치는 늦장 행정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에 관한 규제를 여성가족부에서 다루는 것도 문제다.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와 예술이 관료주의에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은 대중가요의 가사에 술이나 클럽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나 추적할 것이 아니라 고 장자연의 죽음처럼, 또 울산 접대부 여성들의 연쇄 살인처럼 여성들이 당하는 성적 차별과 폭력을 막기 위한 단호하고도 집요한 노력일 것이다. 정작 여성들이 어떤 강한 힘에 의해서 희생당할 때에는 침묵하더니 애먼 가수들 목줄이나 쥐고 흔들자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또한 규제의 권력을 과시하기 전에 문화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비상이 극약이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약이 되기도 하듯이 여성가족부가 무조건 유해한 것이라고 단정한 특정 단어들에 대한 강박을 먼저 버려야 한다. 문장에 따라서, 또 노래의 경우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과 퍼포먼스의 요소에 따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기능을 익혀야 할 것이다. 문화와 언어는 자로 잴 수 없는 다양한 미학적 응용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이해 못하면 단죄할 자격 또한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대중가요에 술은 사랑만큼이나 흔한 소재이다. 지난주 나가수 중간평가에서 장혜진이 불렀던 바이브의 노래는 제목부터 술이 들어간 노래다. 게다가 가사는 비스트보다 훨씬 더 강하다.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라는 가사만 봐도 여성가족부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건 알코올중독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화자를 알코올중독자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볼 수가 없다.

여성가족부는 노랫말에 술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강박적으로 유해판정을 내리고 있다. 이런 일은 21세기에 벌어질 수 있을 거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5공 시절보다 더 심한 것이다. 81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은 노래 ‘별이여 사랑이여’는 ‘한 잔 또 한잔을 마셔도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지금의 여성가족부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이 노래는 유해하다는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는 지금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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