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나운서 성차별 진정을 인용하자 여성단체로 꾸려진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대전MBC와 본사MBC를 향해 인권위 권고를 조속히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전MBC는 정규직은 물론 무기계약직 전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이다.

인권위는 17일 ‘남성은 정규직 아나운서, 여성은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로의 채용은 성차별’이라는 유지은 대전MBC아나운서의 진정을 인용한 결정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유 아나운서가 대전MBC를 상대로 고용 성차별 문제를 제기한 지 1년 만이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대전MBC 아나운서의 정규직 전환, 성차별 채용 관행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 위로금 500만 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18일 상암 MBC본사 앞에서 대전MBC아나운서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국가인권위의 대전MBC 여성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인정 환영한다. 공영방송 MBC는 국가인권위 권고안 조속히 이행하라'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이재근 대전MBC경영국장은 18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인권위 권고 수용 여부에 대해 “(유지은 아나운서의)정규직 임용 관련해서는 순응하기가 어렵다"면서 "무기계약직 전환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위로금 500만원 지급 판결과 관련해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위가)업무 다양성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 아쉽고 동일 업무나 근로자 지위에 있어 다툼의 소지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성차별적 채용 관행 관련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의도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차별하진 않았지만 인권위에서 판단했다고 하니 앞으로는 성별채용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MBC 본사는 인권위 결정을 수용할지 여부에 대해 “어제 인권위 결정이 나와 세부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결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서울 MBC는 “서울 MBC가 지역 MBC의 대주주이기에 향후 동건과 관련된 사례가 발생할 경우, 지역MBC 사장단과의 협의를 통해 그룹 전체적인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대전MBC가 인권위 권고를 사실상 거부하자 '공동대책위’는 18일 서울 상암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유 아나운서 사건을 담당한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인권위 결정에는 진정이나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벌칙조항이 없다보니 이를 악용하고 있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진정 결과는 조사기간이 1년이었고 서면 공방만해도 수백 페이지에 이른다. 대전MBC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지만 증인에 대한 진술, 통계, 전국 조사까지 포함해 나온 인권위 결정으로, (인권위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라) 공영방송에게 기대를 걸었던 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김 노무사는 대전MBC를 두고 ‘악의적’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면 해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 하나,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남겨둬 생활고를 겪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유 아나운서에게 지급되는 비용은 한 달에 5,60만원 선이다. 김 노무사는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며 근로기준법상 차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는 박은주 활동가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를 제기한 지 1년 만에 분명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돼서 너무도 기쁜 마음”이라면서도 “동일한 일을 하는데 왜 동일한 처우를 받지 못하냐”고 되물었다.

유 아나운서는 “사측은 소송으로 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판결문만큼이나 상세한 결정 이유가 담긴 결정문을 보고도 소송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한 명의 여성 아나운서를 짓밟고 괴롭히겠다는 의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사측의 행동을 보며 ‘자살하기라도 바라는 건가’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호소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유 아나운서가 1년 동안 이 사안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온 건 정말 용감한 일”이라며 “대전MBC는 유 아나운서에게 100번 사과해야하며, 법정 다툼까지 언급하는 대전MBC의 경영은 해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본사 MBC의 책임을 물었다. 인권위 결정문에는 'MBC본사를 포함해 지역 계열사 방송국 채용 현황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 방송사들과 협의하는 등 대책 마련을 권고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 대표는 “대전MBC에 지시하라는 게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채용 성차별 관련 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기업이 남녀고용평등법의 채용 성차별 금지조항을 위반해도 최고 500만원 벌금, 채용절차 서류를 폐기해도 과태로 300만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신 사무국장은 “이번 인권위 결정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살리는 하나의 시작일뿐”이라며 “인권위 결정이 결정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성평등노동 실현을 위한 정책과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책위는 대전MBC에 인권위의 권고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다. 유 아나운서의 정규직 전환, 1년 동안 부당업무배제와 사내 고립으로 고통받은 것에 대한 책임, 사측이 유 아나운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대전MBC와 MBC본사에는 성차별 채용 관행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성평등한 채용과 노동환경 조성을 위해 지역 계열사의 채용 현황과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시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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