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지밖에 몰라', 아마도 이 말에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많은 아내들이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까. 살면서 몇 번은 속으로, 혹은 혼잣말로 되뇌었던 '남편'을 향한 대사였으니. 분명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것임에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저런 감정이 느껴지게 된다.

가정을 어떻게든 잘 꾸려나가기 위해 아내가 자신의 시간, 노력 등을 던져가는 반면, 어느 순간 '가장'의 위세로 자신을 고집하는 지점에 맞닥뜨릴 때 그 막막한 벽 앞에서 느껴지는 좌절감의 표현일 것이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란 일상의 풍경이었다. 이제 와 '졸혼'이 등장했지만, 그 졸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지밖에 모르는 남편을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라 자조적으로 생각하며 견뎌왔다. 젊은 세대에 와서 많이 달라져 육아의 부담을 나누고, 공동체적 합의에 충실하려 하지만 그 비율이 만족스러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남성,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아버지 김상식 씨와 사위 윤태형을 통해 세대별 남성상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뒤늦은 오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6회, 남편 김상식(정진영 분) 씨는 이제 기억이 돌아왔다며 아내 이진숙(원미경 분) 씨에게 '졸혼'을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 이진숙 씨는 그런 남편 김상식 씨가 수상하다. 아니 수상할 뿐만 아니라, 이제야 홀가분하게 자신이 짊어져 왔던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나 싶은데 22살이 되었던 김상식 씨로 인해 자꾸만 옛 생각이 떠오르며 싱숭생숭해진다.

하지만 사실 김상식 씨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아내에게 졸혼을 하자고 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그를 스쳐가는 자신의 지나온 나날들. 그는 큰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한 날 먼저 상에 앉아 음식에 손을 대는 그를 말리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나서던, 제 멋대로인 남편이었다. 거기에 동료 말에 따르면 “그 돈으로 어떻게 형수님이 아이들을 키웠는지 놀랍다”고 할 만큼의 생활비를 주던 인색한 남편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남의 아이를 가진 진숙 씨에게 무릎 꿇고 청혼했던 상식 씨가 변해 버린 그 어느 날부터 상식 씨는 가정의 폭군이 되어 살아왔다.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만으로 군림했다. 아내보다 못 배우고, 점점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족한 듯한 자괴감을 이른바 '열폭'으로 표출했다. 말은 칼보다 날이 섰으며, 눈길만으로도 아내를 자지러지게 했고, 분노한 그의 손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

이제 다시 22살이 되어버린 상식 씨는 그렇게 제 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진숙 씨를 괴롭히며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견딜 수가 없다. 오열했다.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진숙 씨를 그렇게 괴롭힐 수가 있나 하며.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진숙 씨가 원하는 대로 졸혼을 하기로.

잘못 꿰어진 결혼, 뒤늦은 결심

여기 또 한 사람, '졸혼'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 김상식 씨의 첫째 사위 윤태형(김태훈 분)이다. 뉴질랜드로 세미나를 가겠다던 그는 아내 은주(추자현 분)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노트북을 놔두었다. 그 노트북에는 아내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될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갔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도망치곤 하던 소록도로 갔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왜 하필 언니였냐”는 처제의 질문에 아내 은주도, 자신도 집에서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의사 집안 대를 이어 의사가 된 태형은 남들이 보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다. 한번도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그래서 자신을 옭아매는 집으로부터 도망치듯 아내를 방패 삼아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아내를 아이를 가지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한편, 자신의 정체성을 가정으로 회피하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는 분노한다.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았음을, 그리고 그 비겁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채팅창으로 알렸음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을 방조했던 그 치사함을. 늘 도망치고 회피하고 살아왔던 삶에 대해 질타하는 아내에게 분노했지만 떠난 아내의 뒷모습에 처참하다. 편의적으로 회피하여 온 삶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내. 잘못 꿰어진 결혼이 남긴 상흔이 깊다.

김상식 씨도, 경우는 다르지만 사위 태형도 가정이라는 함께 꾸려가야 할 삶을 자신의 멋대로 재단해버린 결과에 봉착했다. 22살의 여린 청년이 되어버린 김상식 씨에게는 괴물처럼 느껴지는 지난날들. 뒤늦게라도 되돌리려 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아내. 과연 그들이 이 '자기 멋대로' 살아온 삶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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