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에서 메이저 대회와 가장 이렇다 할 좋은 연을 맺지 못한 나라는 바로 잉글랜드입니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반세기 가까이 단 한 번도 우승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잉글랜드는 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프랑스, 스페인까지 월드컵, 유로 대회 우승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며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유럽에 잉글랜드가 있다면 남미에는 아르헨티나가 있습니다. 좋은 전력을 갖추고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지 이제 2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자국에서 열린 2011 코파 아메리카 컵에서 '무관의 설움'을 풀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남아공월드컵 때 완전히 부활한 우루과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8강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홈팬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고, 이러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 꿈속으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사진= 코파아메리카 홈페이지)
아르헨티나는 19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디에고 마라도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등을 앞세워 전성기를 내달렸습니다. 1986년 월드컵 우승, 1990년 월드컵 준우승, 1991, 1993년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하면서 아르헨티나 축구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라이벌 관계였던 브라질조차도 아르헨티나 앞에서는 크게 기를 펴지 못했던 때가 이때였습니다.

하지만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아르헨티나의 행보는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금지 약물 복용으로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중도 하차한 것을 시작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대회를 치르다 결국 나이지리아, 불가리아에 밀려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쓴잔을 맛봐야 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를 16강에서 승부차기로 꺾으며 기세등등하게 올라왔다 8강에서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하며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4개 대회 연속 4강조차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바야흐로 암흑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의지는 대단했지만 조별 예선 2차전 잉글랜드에 0-1로 지고 3차전 스웨덴과 비기면서 조 3위 탈락이라는 쓴맛을 또 한 번 봐야 했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다 8강에서 연달아 독일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단 한 번도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만 아르헨티나가 됐습니다.

그나마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2004, 2007년 대회에서 어느 정도 명예 회복을 하며 2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뼈아팠습니다. 특히 2007년 대회에서는 4강까지 5전 전승을 달리다 결승에서 브라질에 0-3 참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습니다. 코파 아메리카에서 유독 브라질에 약하기는 했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았던 터라 이날 패배는 아르헨티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이후 코파 아메리카, 메이저 대회 우승의 꿈을 위해 아르헨티나는 절치부심 노력을 했습니다. 국민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던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을 갈아치우고,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을 선임한 뒤, 빠르게 팀을 추스르며 팀 만들기 작업에 열을 올렸습니다. 대회 전에 치른 평가전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리오넬 메시라는 특출한 선수가 있고, 강한 허리 자원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홈에서 열리는 이점을 바탕으로 뭔가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아르헨티나는 조별 예선 1,2차전에서 실망 가득한 경기력으로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선수들 간의 플레이는 겉돌았고, 개인기에 의존하다 도리어 위기를 자초하며 위협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3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우루과이 골키퍼 무슬레라의 선방과 '러시안 룰렛' 승부차기의 불운에 끝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세계 최고 선수로 평가받는 리오넬 메시조차도 아르헨티나의 무관 설움을 털어내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8강이 끝난 뒤,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실망감을 금치 못했지만 바티스타 감독은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며 애써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메이저 대회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브라질월드컵까지 3년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축구협회 내부적인 문제를 잘 해결하고, 개인 성향이 강한 선수들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전술적인 운영,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아르헨티나의 '무관 아픔'은 꽤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도 따르지 않은 면이 있지만 그만큼 빌미를 스스로 만든 아르헨티나 축구의 잇따른 좌절을 지켜보며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매 대회마다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하지만 늘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내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 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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