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 서울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흥미로운 농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한국 농구 최고의 흥행기였던 1995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 최고 인기 팀이었던 라이벌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OB 선수들이 대결을 펼친 것입니다.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김훈 등으로 구성된 연세대와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박훈근 등으로 이뤄진 고려대 옛 선수들을 코트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흐뭇했지만 이벤트성 경기였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양 팀 선수들의 플레이는 정말 1995년으로 다시 돌아간 듯 했을 정도로 화끈했습니다. 승패가 엇갈렸지만 한국 농구의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뭉친 옛 스타들의 화려한 플레이는 많은 농구 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침체돼 있던 한국 농구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좋은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문화계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이 스포츠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포츠 옛 영웅들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돼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시키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기에 화려한 실력을 이제는 볼 수는 없지만 양복이나 일상복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 다시 나선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 농구 OB 고연전(연고전)에서 맹활약한 고려대 김병철, 연세대 우지원 (사진: CJ E&M)
이번 농구 고연전(이벤트 정식 명칭)을 기획한 CJ E&M 측은 향후 2탄 성격으로 대학 배구 최강팀이었던 성균관대와 한양대 대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배구팬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김세진의 한양대와 신진식의 성균관대는 1990년대 배구 코트를 뜨겁게 달구며 많은 팬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이 대결이 성사된다면 10여 년 만에 다시 대학 배구의 진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CJ E&M은 농구 고연전과 마찬가지로 이 경기 역시 단순 이벤트성 경기가 아닌 배구 중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는 뜻도 밝혔습니다.

프로야구도 30주년을 맞아 한국야구위원회(KBO)레전드 올스타를 선정, 기념행사를 갖기로 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만수, 선동열, 김재박, 한대화, 장효조, 양준혁 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선수들이 레전드 올스타로 선정돼 이미 기자회견, 화보촬영 등 일부 이벤트를 진행,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길 만한 일이었고, 젊은 팬들에게는 프로야구 어제와 오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 역시 스포츠 복고 열풍에 불을 지폈습니다. 지난 2,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올림픽 메달리스트, 복싱 챔피언 등 옛 스포츠 영웅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들에 대한 예우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4월에 체육학계, 단체, 언론인 등 300여 명이 참석한 스포츠 영웅 대우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박 차관을 비롯해 체육계 원로들까지 참석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스포츠 영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이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기념할 만한 공간을 만들 것을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 마침내 스포츠영웅 중심의 인물, 역사, 정보, 체험이 통합된 공간인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가칭)'을 설립, 운영할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잊혀진 옛 스포츠 영웅들이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준 소중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을 기억할 만한 행사나 공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좋은 성적을 낼 때만 관심을 가지다 은퇴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내달리는 우리 스포츠 문화 특성도 한몫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에 따른 후유증을 느낀 선수, 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옛 것을 추억하고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복고 열풍이 서서히 한국 스포츠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단순한 현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의미와 목표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좋았던 때를 떠올리며 앞으로 새로운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복고 열풍을 통해 다지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방송, 음악, 패션 등 문화계의 복고 열풍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그 수준이 미미해도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반대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기억해주고 더 나은 목표를 위해 달리겠다는 것은 우리 스포츠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계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스포츠 영웅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고 큰 족적을 남긴 이라면 당연히 이들을 오래 추억하고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웅들을 직접 접하지 못한 어린이들도 이 명예의 전당을 통해 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 시스템을 도입, 전 종목에 걸쳐 활성화시킨다면 스포츠의 질적인 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경기력, 그리고 문화, 산업적인 면을 봐도 옛 것을 되새기는 일은 중요합니다. 물론 단순히 옛 것을 추억하기만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찾음으로써 균형 있는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계의 복고 열풍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한국 스포츠가 더 성장하는 밑거름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현재의 복고 열풍을 잘 가꾸고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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