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고 이한열 열사에 빗대 표현한 경향신문 만평이 지탄받고 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 맥락을 잘라 장면만 치환시킨 것은 ’재현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11일 자 3면에 ’김용민의 그림마당‘ 만평을 실었다. “6·10, 민주항쟁 33주년...”이란 문구 아래 ‘재용이를 살려내’라는 신문지를 마스크 삼아 쓰고 있는 남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는 1987년 6월 9일 군사정권 항거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열사의 모습과 닮아있다. 여기에 주변에는 돈이 날아다니는 장면과 함께 ‘부당이익 수조원’, ‘국민연금 수천억’이라는 문구를 더했다.

해당 만평은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 특집 면에 <보훈 영역에 ‘민주’ 첫 포함…반독재·인권 ‘유공자’ 대거 훈포장>, <여권 일제히 “이젠 일상 속 민주주의로”> 기사 아래 배치됐다.

11일 경향신문 3면에 실린 만평

구속영장 심사를 앞둔 이 부회장 편들기식 기사를 써낸 언론들을 비판한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은 지난 4일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주가 시세 조종,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9일 새벽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삼성의 입장에서 기사를 작성해 비판받았다. 동아일보의 <이재용 8일 영장실질심사…재계 “대기업에만 다른 잣대 적용”>(6월 5일) 등이다.

하지만 해당 만평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페이스북에 만평을 공유하며 문제라고 지적한 채효정 정치학자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고, 나도 그 메시지에는 적극 동의한다. 이재용 구속영장 심판을 앞두고 조·중·동이 노골적으로 펼쳤던 ‘이재용 구하기’ 여론몰이 작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다만 “‘재현의 윤리’라는 것이 있다. 이 장면을 이런 식으로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의 희화화는 현실의 정보 왜곡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했다. 채 학자는 경향신문 오피니언 ‘세상읽기’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김용희, 철탑 위의 삼백일’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의 노조파괴 운동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채 학자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으로 만평의 문제를 짚었다. 채 학자는 “재현에는 당시의 상황과 정치적 맥락이 함께 나와야 하는데 이 만평에 나타난 재현은 역사로부터 해당 장면만 도려냈기에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이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식의 맥락에서 이 장면의 재현이 사용될 수 있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다. 만평가가 말하려는 의미에는 공감을 하지만 맥락이 뒤바뀌었다. 군사독재가 기업독재로 바뀐 상황에서 이재용의 존재는 당시의 전두환과 같다. 일종의 가해자(이재용 부회장)를 피해자(이한열 열사)의 위치로 재현했다는 걸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고 짚었다.

이와 더불어 “만평은 해학과 풍자의 문법이 존재하지만 역사적 맥락을 훼손하고 한 장면을 도려내 가해자와 피해자 위치를 바꿔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 유족들이 살아있고 1987년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만평을 유족들이 본다면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기각으로 1년 6개월간 관련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법원은 불공정 합병, 분식회계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한 상태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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