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축구 선수나 감독으로 활약하는 꿈을 꿨을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얻은 자료를 분석하고,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해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요즘에는 축구 게임을 통해 일반 감독처럼 직접 전략도 세워보고 대리 만족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프로 팀 감독을 하기에 우리의 환경에서는 거의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비축구선수 출신 인물이 지도자를 하여 성공한 사례도 없었고 그만큼 위험 부담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해외 역시 하부리그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기는 해도 1부리그 감독을 비축구선수 출신 인물이 감독을 맡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첼시 새 감독 (사진: 첼시 FC 홈페이지 보도 자료)
그랬던 가운데서 최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첼시 FC가 '엄청난 모험'을 감행해 전 세계 축구팬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선수 경력이 없는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FC 포르투 감독을 첼시 새 사령탑으로 영입한 것입니다. 유럽 챔피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콜라리, 히딩크, 안첼로티 등 명장들을 잇달아 영입했다가 단 한 번도 꿈을 이루지 못했던 첼시는 '비장의 카드'로 지난 시즌 포르투갈 리그 무패 우승을 이뤄낸 비야스-보아스를 새 사령탑으로 영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다시 한 번 정상 정복 꿈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감독 경력 역시 통산 100경기도 안 된 인물이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팀 가운데 하나인 팀의 감독에 선임되자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비야스-보아스는 새로운 도전을 즐길 준비를 하며, 전력 구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야스-보아스는 이렇다 할 선수 경력이 없는 감독입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FC 포르투를 좋아하는 열성 청소년팬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축구 명장과의 인연이 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16살 때, FC 포르투를 이끌던 명장 바비 롭슨에게 보낸 전술, 선수기용 비판이 담긴 편지 하나가 한 열성 축구팬을 도전적인 축구 감독, 세계적인 팀을 이끄는 지도자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비야스-보아스가 적은 전술적인 내용에 감탄했던 바비 롭슨은 포르투 유스팀 코치 훈련생을 제안했고, 그렇게 비야스-보아스는 축구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우연하게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스스로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꿈을 그때부터 서서히 실현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비야스-보아스는 꾸준하게 실력을 쌓았습니다. 17세 때 스코틀랜드에서 UEFA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낸 뒤 돌아와 포르투 유스팀을 맡았고 이듬해 다시 B급 자격증을 따내고는 영국령 버진군도 대표팀의 기술위원장 겸 감독에 부임해서 2002년 월드컵 북중미 예선을 치렀습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 나라의 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할 만큼 무서운 성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은 주제 무리뉴를 만나 8년간 FC 포르투, 첼시, 인터밀란에서 전력분석관 역할을 해 온 비야스-보아스는 무리뉴로부터 독립해 2010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팀, FC 포르투 감독직에 올라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리그 무패 우승,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해 냈습니다. 그야말로 일반 축구팬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비야스-보아스는 꿈을 현실로 이뤄내며 '젊은 명장'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꾸준하게 발전하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에게 첼시는 주목했고, 마침내 비야스-보아스는 첼시 감독이라는 새 직함을 달게 됐습니다. 30대 초반의 선수도 많이 활약하는 오늘날, 30대 초반의 비야스-보아스가 세계적인 팀의 지도자로 선임된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신선함과 충격을 가져다 줬습니다.

▲ 김학범 감독 ⓒ연합뉴스
사실 비야스-보아스 같은 사례는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비 축구선수에 외국인 출신이 감독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물에 기회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경력을 갖고 있던지 능력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잘 조성돼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비야스-보아스와 비견되는 주제 무리뉴도 그렇고 알렉스 퍼거슨, 거스 히딩크 역시 스타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명장으로 거듭난 것은 그만큼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갖춰 성과를 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많은 감독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야스-보아스를 보며 한국에서는 이런 감독이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사례는 있습니다. 철저한 무명 선수 출신이었고 은행원으로 6개월여 근무했던 경력을 갖고 있는 '학범슨' 김학범 감독이 있습니다. 숱한 역경과 시련,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 성남 일화를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게 한 김학범 감독의 사례는 많은 축구인들에게 감동을 자아냈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김 감독의 모습은 동료 지도자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비야스-보아스 같은 '깜짝 신화'가 자리 잡기에는 아직 우리 축구 문화는 좀 보수적인 느낌이 강한 게 사실입니다. 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학연, 인맥에 얽매여 있는 우리의 풍토에서 신선한 인물이 프로 팀 감독을 하는 것은 거의 막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해박한 지식을 갖춘 축구 기자 출신들이 방송 3사 해설자로 자리를 꿰차고 대중의 열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축구 문화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직은 꿈만 같지만 다양한 인물이 큰 무대에서 도전을 하는 것은 한국 축구계에도 분명히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 K리그 무대에서 비야스-보아스 같은 인물이 팀을 지휘하고 우승도 거머쥐는 꿈같은 일이 언제쯤 일어날지, 한번쯤은 '기분 좋은 상상'도 해 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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