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훈육: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 훈육의 사전적 의미다. 훈육은 아이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해 감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며칠 전 아홉 살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 있다 혼수상태에 빠진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아이는 결국 죽었다.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아이의 새엄마였다. 새엄마는 훈육 차원에서 아이를 가방에 가뒀다고 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고문에 관한 역사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벌을 주었을까, 의문스러웠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는 말에 기가 막혀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새엄마는 훈육과 처벌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훈육을 위해 아이를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도 있다. 훈육을 처벌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체벌은 교육 차원에서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동학대로 이어진다.

아동학대로 구속된 부모의 말을 들어보면 항상 같다.
훈육이었습니다. 훈육 차원에서. 거짓말하는 아이라니까요.

여행용 가방에 7시간 감금됐다가 숨진 아이가 살던 아파트 상가에 지난 5일 만들어진 추모공간. 이 추모공간은 한 상인이 만든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이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해 훈육의 방법으로 가방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훈육이 목적일 수 없다.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없는 약한 대상을 상대로 한 화풀이일 뿐이다. 아홉 살 아이에게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도록 하는 행위를 훈육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아동학대가 뉴스에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아이가 부모에게 가혹 행위를 당해도 쉽게 도와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 인식 탓이다. 부모가 교육적 차원에서 체벌할 수 있으며 이런 행위는 다분히 개인의 일이며, 가정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을 때 겪은 일이다. 늦가을, 제법 추운 날씨였다. 바깥 아파트 복도에서 남자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보았는데 복도 끝 집에 사는 형제가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 잔뜩 웅크리고 서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보다 못해 어머니가 찾아가 벨을 눌렀다. 아이들의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무슨 참견이냐며 화를 냈다. 훈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끌고 들어간 엄마는 보란 듯이 아이들을 향해 욕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더 나쁜 경우도 보았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새벽에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에 놀라 잠에서 깼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급하게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자주 고함치는 소리 뒤에 부서지고,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루는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했다. 윗집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자 관리실 직원은 난감해했다. 가정사라, 라고 말을 흐렸다. 나도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전염병은 사람들을 집안에 콕 박혀 있도록 만들었다.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학대를 일삼는 어른과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집은 지옥이다. 집안의 어른은 아이를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협하는 사람이며 공포의 대상이다. 아이를 위험에서,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인의 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개인과 가족이 해결하도록 둔다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죽는 아이가 앞으로도 수없이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의 부모는 훈육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부모뿐 아니라 사회도 나눠서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도 공동 양육에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이 온전하게 자랄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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