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 내용만 보도하고, 사건 명칭을 성추행이 아닌 성모욕행위로 표현할 것"(1986년 7월 17일)

"김근태 공판, 그가 ‘고문당하고 변호인 접견을 차당 당했다’는 등의 주장은 보도하지 말도록. 사진이나 스케치 기사 쓰지 말 것"(1986년 1월 24일)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1986~1987년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보도지침 폭로사건’의 원고 원본이 최초로 시민에게 공개된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기사작성 지침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의 대표적 언론통제 수단이었다.

시민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보도지침’ 사료는 1986년 9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발간한 기관지 <말> 특집호 ‘보도지침,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 원고 원본이다.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보도통제를 위한 세부 일일지침으로 각 언론사 편집국 간부에게 전화로 지령한 메모 형식의 자료 584건이다.

1987년 7월 17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관련 보도지침 (사진제공=민언련)

‘보도지침’ 원고에는 빨간 펜으로 교정 교열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원고지에 문장을 옮겨 인쇄소로 넘겨야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이뤄졌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보도지침' 원본은 임상택 월간 <말> 상무가 별도로 보관해왔던 것으로 2019년 12월 19일 민언련 제35주년 창립기념식에서 민언련에 기증됐다. 임상택 상무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사료를 기증받은 민언련은 한국언론사뿐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귀중한 사료가 될 이번 자료의 철저한 관리와 보존, 폭넓은 활용을 위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탁관리 기증을 결정했다.

1986년 보도지침이 <말> 특집호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을 때 김태홍 당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2011년 별세), 신홍범 실행위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 등은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누설죄, 외교상 기밀누설죄, 이적표현물 소지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국가모독죄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9년 후인 1995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 받았다.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 공동대표는 “보도지침 사료는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박탈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라며 “언론은 국민을 위해 사실대로 공정하게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보도지침 사료를 질 보존하여 앞으로 언론의 역할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교훈을 남겨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선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민언련이 소장한 귀중한 사료를 위탁해 감사드린다. 보도지침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 전두환 정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업회가 잘 보존하여 후대에 보도지침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8일 오전 10시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을 연다. 이날 기증식에는 보도지침 자료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제보한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와 보도지침 폭로사건 실행을 총괄한 신홍범 당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실행위원, 보도지침 사료를 기증한 임상택 전 월간 <말> 상무가 참석하여 보도지침 사건의 역사와 의미를 밝힐 예정이다.

이날 기증식을 기점으로 민언련이 보관하던 보도지침 사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이관되며 향후 정리 작업을 거쳐 사료정보 서비스인 오픈아카이브(https://archives.kdemo.or.kr)를 통해 시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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