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주 상무는 K리그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모처럼 명문 축구 팀으로 떠오르는 듯 했습니다. 경북 상주로 연고를 이전한 뒤에 지역민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덩달아 김정우, 최효진, 김치우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리그 선두에 오르는 등 '작은 혁명'을 일으키며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뭔가 의지도 있어 보였고, 그래서 시즌 끝날 때까지 큰 일을 낼 것이라는 기대도 컸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상주 상무, 아니 상무 피닉스 축구단은 '최악의 팀'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최근 무려 9명의 소속팀 선수가 승부조작 가담 혐의로 구속되거나 불구속 기소된 데 이어 이수철 감독까지 11일 공갈,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군검찰에 전격 구속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팀 보유 선수 가운데 20%가 전력에서 제외된 데 이어 수장마저 구속됨에 따라 상무는 그야말로 한쪽 구멍이 완전히 뚫린 상태에서 남은 시즌을 보내야 하는 형편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선수들은 크게 동요하면서 5연패를 기록하고, 선두권에서 맴돌던 순위도 리그 13위까지 추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가의 모범이 돼야 하는 군인 팀이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 현대 오일뱅크 K리그 17라운드 FC 서울전을 마친 뒤, 서포터를 향해 인사하는 상주 상무 선수들. '우리는 영원히 그대들을 지지합니다!!'라는 응원 문구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틀 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진: 김지한)
상무 축구단이 K리그, 그리고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는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2003년 K리그에 입성한 이후,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상무 팀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고, 경기력을 유지해서 더 좋은 선수로 거듭난 경우가 많았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동국, 조재진, 정경호, 조원희 등이 상무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팬들에 좋은 모습을 보였고, 최근에는 김정우가 '뼈드라이커'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공격수로의 변신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현재 득점 1위에 오르는 진가를 보여줬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면서 K리그에서 감각을 유지하고 키워 나가는 데 많은 선수들에 도움을 줬던 면으로는 상무 축구단의 역할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K리그 입성 때부터 상무 축구단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적, 가치에 따라 대우를 받는 프로 세계에 걸맞지 않게 일반 병사와 동일한 월급을 받고 선수 생활을 한 선수들이 K리그에 뛰는 자체부터 문제였습니다. 많은 연봉을 받던 선수들이 대부분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테스트를 거쳐 상무 축구단의 일원이 되면 군인 규정에 따라 1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고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금전적인 부분과 관련해 많은 고민, 유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다 군팀의 특성상 외부와 차단된 채 합숙 생활을 하지만 일반 부대에 비해서는 비교적 외부와의 직, 간접적인 접촉이 유연하게 이뤄질 수 있는 면도 문제입니다. 이 같은 환경 그리고 선수 개인의 금전적인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화근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상무 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볼 수 없는 일이 많았던 것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해도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은 할 수 없는 규정, 전 소속팀이었던 광주에 팀이 생기면 다른 곳으로 연고를 옮겨야 했던 현실, 20-24개월 군생활 기간에 따라 시즌 중반에 정해진 트레이드, 선수 이적 허용 기간이 아님에도 전역한 선수들이 대거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것은 한국 프로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큰 동기 부여가 없다보니 적당히 뛰다가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원 소속팀에 가서 더 좋은 활약을 펼치는 제대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상무 축구단이 K리그에 참가한 이후 플레이오프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고, 전 연고지였던 광주 축구팬들조차 외면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상무는 내부적으로 온갖 부정행위가 저질러졌습니다. 제대한 선수 가운데서도 그랬고 현역 복무중인 선수들, 나아가 이수철 감독마저 부정행위로 군검찰에서 기소됐습니다. 이수철 감독의 경우, 승부조작 여부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금품 수수를 했다고는 스스로 시인해 상무 축구팀 내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올해 상무의 새 연고 지역인 경북 상주시 관계자, 상주 서포터, 팬들만 난처한 입장이 됐습니다. 내부적인 환경, 규정 등이 있다고 하지만 이를 무색하게 한 부정행위들은 많은 비판, 비난을 받아야 하게 됐고, 씁쓸함과 허탈감만 가져다 줬습니다.

지난 주말, FC 서울과의 현대 오일뱅크 K리그 2011 17라운드 경기에서 필드 플레이어 출신 '임시 골키퍼' 이윤의의 투혼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감독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도 상무 선수들은 몸을 날려가면서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최선을 다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팬, 전문가들은 '아름다운 패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지 단 이틀 만에 상무는 시즌 5연패 아픔보다 더 쓰라린 아픔을 맛보며 사상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그리고 국군체육부대 관계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 자성, 제대로 된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상무 축구팀은 안타깝지만 더 씁쓸한 상황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팀의 진로에 대한 선택은 오직 상무 축구팀의 의지,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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