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부하 여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피해 직원을 보호하고 있는 부산성폭력상담소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재판부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혹여나 가벼운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이다솔 부산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은 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법원의 구속 여부는)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며 “고위공직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법부가 엄중하게 판결을 내리는 게 아닌 ‘힘 있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구속 수사의 위험은 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지법 영장전담인 형사1단독 조현철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오 전 시장이 범행 내용을 인정하고 있고 증거인멸 등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 사유는 “증거가 모두 확보되고 오 전 시장이 범행 내용을 인정했다”이다. 이날 30분여분간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유치장에 있던 오 전 시장은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치료를 요청해 40분간 병원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진=연합뉴스)

이 상담원은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너무 많은 가해자가 ‘초범이다’ ‘어리다’ ‘나이가 많다’ 등의 이유로 처벌을 피하고 있고 이는 재판부의 관성”이라며 “사람들이 판단하기에도 재판부가 가해자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비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혐의는 인정하지만, 범행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오거돈 전 시장 측 주장에 대해서는 “가해자들이 너무 흔하게 하는 말”이라며 “혐의에 대해 인정하는 척하며 구속을 빠져나가는 형태인데 이는 (혐의)인정 범위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만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재판부가 심신미약 상태, 우발적 범행에 대해 관대하게 보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며 “우발적 범행이라고 하지만 성폭력 범죄에서 우발적 범죄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상담원은 “재청구해서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보여진 정치권의 대응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했다. 또 오 전 시장의 사퇴 결정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상담원은 “가해자가 사퇴했다고 책임을 다한게 아니다. 그 사람이 미친 사회적 파장이 너무 커서 특정 정당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책임감을 느끼고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당에서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입장표명을 내고 재발방지를 위해선 정치인의 성범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눈에 보이는 대응을 내놔야 된다”며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현명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앞서 오거돈 성추행 의혹이 알려진 이후 정치권은 ‘민주당이 선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냐 몰랐냐’를 두고 진실공방을 벌였다. 피해자 측이 이를 우려하는 입장문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오 전 시장 측이 사퇴 시기를 조정했다는 식의 정치적 해석까지 나왔다. 이 상담원은 “피해자가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언제 요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위공직자가 성폭력을 저지른 부분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논의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상담원은 피해자 보호에 언론이 동참해 달라고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앞서 의견문에서도 수차례 밝혔듯 피해자에 대한 추측성 보도나 2차 가해성 게시글을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 상담원은 “피해자가 업무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가 워낙 높은 직책에 있던 사람이고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부터 전관 변호사들까지 선임했으니 피해자는 얼마나 두렵겠냐”며 “경·검에서는 의지를 보여서 했는데 재판부에서 (구속영장) 기각 결정함으로써 나중에 가서 처벌도 가벼워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주축으로 여성·시민단체들이 꾸린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오는 9일 부산 시청 앞에서 오거돈 사건 공동대채구이원회 출범 및 가해자 엄벌촉구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 상담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미투 말고 다른 선택지가 생기고, 정치권 내에서도 환기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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