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9일과 10일 이틀 동안 2차 희망버스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가야 했고 때 마침 저희 팀에 저밖에 갈 사람이 없기도 했고, 관심이 있는 분야여서 주말 반납하고 흔쾌히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희망버스 취재를 자원하고 나선 데에는 시민들이 기울이는 관심만큼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 안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녀오길 잘 했더군요.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언론들이 희망버스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11일 방송3사 뉴스를 뒤늦게 찾아보았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방송3사 모두 30초짜리 사건 사고 뉴스처럼 보도하고 말았더군요.

▲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찾아온 시민들이 9일 저녁 부산역 광장에 모여 문화제를 열고 있다. ⓒ허재현 기자
시민들은 영도조선소 진입 시도한적 없다

축소보도는 그렇다 쳐도 왜곡보도도 눈에 띄었습니다. 방송3사 모두 시민들이 “영도 조선소를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더군요. 시민들은 영도 조선소를 700m 앞두고 경찰 차벽에 가로 막혀 조선소며 85호 크레인이며 그 어느 것도 구경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보도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차 희망버스 기획단은 이번에 영도 조선소 안으로 들어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평화롭게’. 이게 모든 계획의 제일 원칙이었습니다. 보도자료에도 그렇게 써 있었고, 희망버스 기획단 핵심 관계자들 그 누구도 영도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언론에 전한 적 없습니다.

어쩌면 10일 희망버스 관련 보도를 한 MBC, KBS , SBS 기자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믿은 죄밖에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시민들이 영도 조선소 진입을 시도했다”고 제일 먼저 보도한 곳은 연합뉴스(오수희 기자)였습니다. 언론들이 대체로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보도를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방송사들의 저 왜곡보도는 연합뉴스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쓴 연합뉴스 기자에게 공개적으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현장에 있었는지. 있었다면 대체 시민들이 영도 조선소 진입을 시도했다는 팩트는 어디서 수집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경찰의 협조를 얻어 경찰 차벽 뒤로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한진중공업 조선소 쪽으로 걸어가는 시민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어디서 확인한 겁니까.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한진중공업 인근에 세워진 경찰 차벽 앞에서 경찰에 항의하다 캡사이신 분말을 얼굴 정면에 맞고 쓰러졌다. ⓒ허재현 기자
시민들이 영도 조선소 진입을 시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팩트입니다. 일반 기업의 사유지를 허락 없이 들어가는 것은 명백한 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합니다. 이건 경찰과 시민사회가 폭력시위 여부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팩트를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써버려서 대부분 국민들이 희망 버스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오보를 냈다면, 이건 당장 사과해야 할 일입니다.

또 하나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방송3사는 경찰의 폭력진압을 아예 보도도 안 했습니다. 정말 그날 새벽 2시 40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못 본 걸까요. 경찰이 진압장비 규정을 위반해 방패로 시민들을 공격하고, 캡사이신 분말기를 시민들한테 무차별 사용한 것들을 못 본 걸까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캡사이신 분말기를 눈에 정면으로 맞아서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그것도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경찰이 시민들을 폭력진압한 것은 대단히 큰 뉴스 아닙니까? 이 팩트를 왜 보도하지 않습니까? 경찰청장이 사과하거나 책임자가 옷 벗어야 할 엄청난 뉴스 아닙니까?

왜 언론이 한진중공업 눈치를 보는가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언론의 왜곡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6월27일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를 전하는 언론들의 태도는 경악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마치 파업중단에 동의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노조 지도부가 현장에 남아 있던 조합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기습적으로 파업 철회 선언해버렸다고 보도한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공장을 점거한 농성자들을 상대로 파업철회 찬반 투표도 안 거치고 합의를 선언하는 노조 지도부에 언론이 정말 아무 문제의식도 못느끼는 것을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 때도 공장 안에 남아 있던 노조원들은 전체 노조원에 비해 소수인 800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공장에 남아있던 노조원들의 파업 철회여부를 묻고 공장점거를 풀었습니다. 그게 순리이고 원칙이니까요. 게다가 한진중공업은 엄연히 금속노조에 속한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지부장이 제 멋대로 파업철회를 선언한 것에는 위법성까지 있습니다.

언론인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좀 건방지게 들린다면 죄송합니다만, 왜들 그러십니까. 왜 한진중공업의 눈치를 보십니까. 한진중공업이 청와대라도 됩니까. 우리 기자들로서는 제 3자에 불과한 그냥 대기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왜 회사 쪽의 입장에만 충실하게 보도하는 겁니까. 왜 메인 뉴스로 다루지 않는 겁니까.

▲ 부산 영도구 봉래교차로 인근 도로에서 연좌시위 하고 있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허재현 기자
희망버스, 역사적인 시민운동의 태동

이번 2차 희망버스는 보도 가치도 충분했습니다. 경찰이 폭력진압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찍이 없었던 방식의 새로운 시민운동이 움트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노동운동이라면 고개를 돌리던 시민들이 자기 일도 아닌데 전국에서 만 여명이 버스 타고 부산까지 몰려왔습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연대 온 노동자들은 소수였습니다. 대부분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제가 직접 희망버스를 타고 40명이 넘는 시민들을 확인해서 얻은 팩트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이런 현상은 왜 벌어지는 일일까요.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의 각박함이 시민들의 ‘연대 의식’을 각성시켰고 이 의식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데에 소셜미디어가 있었습니다. 기존의 단체 조직을 통한 게 아닌 여기저기 원자처럼 흩어져 있던 일반 시민들의 수평적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트위터 덕분이었습니다.

주부 이영미(부산시 연산동·40)씨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저는 정말 평범한 주부입니다. ‘부산맘아기사랑’ 카페에 올라온 한진중공업 관련 동영상과 김여진씨의 트위터를 보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면 이런 곳에 와볼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어떠세요. 언론인 여러분. 시민들의 이 증언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메인 뉴스로 다뤄봐도 괜찮은 아이템 아닙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보도가치가 큰 것은 김진숙씨 자체입니다. 6개월 넘게 고공 크레인 위에서 살인적인 농성을 견뎌온 여성이 우리 역사 어디에 있었습니까.

▲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보도한 CNN ⓒ허재현 기자
외신들 “한국언론, 한진중공업 사태 제대로 보도 안해”

알자지라, 르몽드, 시엔엔까지 한진중공업 사태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 언론이 외면하는 사이 시민들이 트위터를 통해 이 사건을 알리고 있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인 여러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합시다. 외신 기자들이 우리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