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4·15 총선 참패 이후 미래통합당에서 '김종인 비대위' 체제와 함께 낡은 보수적 이념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특히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이 강권해 온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탈피하고, 경제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맞춘 진보적 정책 어젠다 선점이 거론된다. 대표적으로 '기본소득'이 해당된다. 향후 이어질 대선, 총선에서 보수 또는 수구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면 통합당과 보수진영이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로라는 해석이 이어진다.

한시적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재정건정성을 악화시키는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던 보수언론에서 보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은 1일 칼럼 <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의 주도를>에서 보수와 통합당의 생존전략으로 '기본소득' 추진을 촉구했다.

중앙일보 6월 1일 <[전영기의 시시각각] 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의 주도를>

전 논설위원의 주장은 철저하게 정치공학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 배경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있었다면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린 기본소득에 대해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간 집권 기회를 영원히 놓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합당은 스쳐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어디에선가 잡아야 한다"며 선제적인 기본소득 추진을 주장했다. 그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는 말을 남겼고, 그의 사회복지 정책은 보수가 세상의 변화에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스마르크는 '철혈정책'의 걸림돌이던 사회주의 노동계급을 사회체제 내로 흡수하기 위해 각종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전 논설위원은 "기본소득은 비스마르크의 전통을 따라 보수의 어젠다라는 측면도 있다"며 "따라서 외면하기보다 직접 뛰어들어 현실적인 안을 만들어 내는 편이 낫다. 독일 유학생 출신의 재정학자로 누구보다 기본소들의 허실을 잘 알고 있는 김종인이 논의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종인 비대위'에 힘을 실었다. 그는 "통합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이 문제에 달려들 만하다"며 "역사의 경험에 따르면 보수든 진보든 상대방 이슈를 내 것으로 선점할 때 집권의 기회가 열리곤 했다"고 통합당 차원의 기본소득 추진을 재차 강조했다.

전 논설위원은 지난달 7일 칼럼<잘 쓰면 위기 극복의 약, 못 쓰면 나라 망칠 독 180석>에서 "재난 기본소득을 맛본 대중이 강화된 권력을 문제 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야당이나 언론, 여론이 정권을 지속적으로 터프하게 견제하는 풍토도 구시대의 유물이 될지 모른다"라고 할 정도로 기본소득 논의에 반감을 표해왔던 인물이다. '자유시장경제 수호'를 주창해 온 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긴급재난지원금 등에 재정건정성 등을 이유로 '현금살포' '포퓰리즘' 딱지를 붙여가며 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와 실험을 비판해왔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통합당에 "엄청난 변화만이 대선 승리의 길",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말라", "경제민주화처럼 더 새로운 걸 내놓더라도 당황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에 통합당이 기본소득, 사회안전망 구축 등과 관련해 21대 국회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비록 정치공학적 이해에 따른 생존전략이더라도 다른 양상이 보수진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진보진영 내에서는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으로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토지 공개념' 도입,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 부동산·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거론됐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이에 대해 사회주의, 사유재산제 훼손 등의 표현으로 강도높은 비판을 이어왔다. 증세를 포함해 일반적인 방식의 세수 확대를 통한 복지정책 실현에도 부정적인 보수진영이 단순 예산 절감 외에 기본소득 추진을 위한 별도의 재원마련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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