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팀에서 골키퍼가 없어 필드 플레이어가 대신 경기에 나선 것은 솔직히 불행한 일입니다. 보유한 선수들 자체가 승부조작 사건 연루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아 나서지 못한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고의 경기력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해야 하는 프로팀이 선수 부족으로 웃지 못 할 촌극을 빚어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살려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팬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상주 상무 수비수이자 '임시 골키퍼' 이윤의 선수였습니다. 강원 FC에 입단했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해 지난 4월 20일, 러시앤캐시컵 부산 아이파크전을 통해 데뷔했던 이윤의는 드디어 잡은 '리그 데뷔전'을 골키퍼로 '아주' 특별하게 치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경기는 아쉽게 FC 서울에 2-3으로 패했지만 이윤의라는 이름 석자를 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준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시즌 17라운드 FC서울과 상주 상무의 경기에서 상주 상무 이윤의 골키퍼가 골대로 향하는 공을 향해 팔을 내뻗고 있다. 이날 상주 상무는 승부조작 혐의로 골키퍼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바람에 수비수 이윤의가 골키퍼로 출전했다. ⓒ연합뉴스
상주는 이윤의가 팀 훈련 때 골키퍼에게 필요한 감각이 괜찮은 것 같아 '임시 골키퍼'로 중용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문 골키퍼도 아닌데다 경험마저 없는 그가 단 3일 연습해서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가 "과연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낳게 했습니다. 실제로 경기장을 찾은 FC 서울 몇몇 홈팬들은 "오늘 서울이 얼마나 많은 골을 넣을지 기대된다"는 말을 쉽게 할 정도였습니다. 경기 전 연습 때도 이윤의는 골키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몸을 풀었지만 다소 어색한 포즈와 엉성한 몸놀림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키면 무엇이든 한다"는 군인 정신이 실전 무대에서 발동이 걸린 것일까요. 이윤의는 연습 때와는 다르게 공중볼에서 안정적인 캐치 능력을 보여주고, 강력하게 날아오는 슈팅을 잘 막아내며 전문 골키퍼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상주 상무 수비수들의 '육탄 방어'도 있었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이윤의의 플레이에 선수들은 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전반 33분, 김정우의 감각적인 패널티킥 골로 앞서 나가며 더욱 기세등등해졌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무실점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 "상주가 이기겠다"는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전반 39분에 나왔습니다. 서울 공격수 방승환의 결정적인 슈팅을 몸을 던져 선방해낸 것입니다. 이윤의의 잇단 선방에 경기장 밖에서 몸을 풀던 동료 선수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냈고,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전반이 끝난 뒤에는 이 선수들 모두 이윤의에게 달려가 화이팅을 외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힘을 북돋아 넣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후반 초반, 실수로 내준 간접 프리킥 상황에서도 이윤의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윤의는 동료 선수들과 함께 철벽 수비를 과시하며 이를 막아냈습니다. 전반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후반 역시 좀처럼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상대팀 FC 서울 선수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마음이 급해지기만 했습니다. 반대로 상주 상무는 짧고 빠른 원터치 패스로 이따금씩 득점 기회를 만들며 한창 좋았을 때의 모습을 다시 회복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윤의는 후반 9분, 서울 골잡이 데얀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상대 선수와 맞이한 1대1 상황에서 나오는 타이밍이 미숙했고, 이를 놓치지 않은 데얀이 그대로 땅볼로 골문 오른쪽 구석을 차 넣으며 골로 연결된 것입니다. 아쉽게 한 골을 내줘서였는지 이윤의는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었고, 고개를 한참 들지 못했습니다.

이어 후반 20분, 이윤의는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온 데얀의 강슛을 막아내지 못하며 역전골을 허용했습니다. 이 골에 대해 이윤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골키퍼만 알 수 있는 아쉬움을 가졌을 정도로 너무 아쉬운 실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이빙을 해 막아낼 수 있었지만 공이 너무 빨리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도 후반 39분, 교체해 들어간 김민수의 그림같은 프리킥 동점골로 2-2 균형을 이루면서 이윤의는 더욱 힘을 냈습니다. 지난 번 서울과의 홈경기 대결에서 아쉽게 역전골을 내주고 패했던 만큼 상주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경기를 이기려 했고, 이윤의도 마지막까지 몸을 던지며 상대의 슈팅을 막아내며 승점을 챙기는데 힘을 내려 했습니다. 전문 골키퍼가 아니었기에 승점을 챙기는데도 수훈 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이윤의는 큰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야말로 프로축구 3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 종료 직전, 이 같은 꿈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몰리나의 강슛을 막아내고, 데얀의 슈팅 상황을 수비수가 걷어내 나온 코너킥을 방승환이 헤딩슛으로 골을 성공시키면서 3-2 서울의 승리로 끝난 것입니다.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버저비터 골이 터져 나오자 서울 선수들과 최용수 감독, FC 서울 마스코트 씨드는 환호한 반면 이윤의와 상주 선수들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쳐 승점을 따낼 수 있는 기회에서 패배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 2-3으로 패한 상주 상무 이윤의 골키퍼 등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가 끝난 뒤에 이윤의는 너무나 큰 아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료 선수들의 격려, 응원을 받으며 이윤의는 밝은 모습을 찾았습니다. 이날 이수철 상주 감독 대신에 경기를 지휘한 김태완 코치도 벤치로 들어오는 이윤의에게 악수를 하며 최선을 다한 제자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습니다. 비록 리그 개막 후 처음으로 10위권 바깥으로 떨어진 상주였지만 이윤의의 파이팅에 새로운 희망을 얻은 듯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인터뷰에서 이윤의는 "군인은 시키면 무엇이든 한다."면서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계속 골문을 지킬 수 있음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물론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전제로 달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경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패기 있게 소감을 밝힌 이윤의의 모습은 당차 보이기만 했습니다.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 군인다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를 보며 앞으로 이런 선수들이 더욱 많아지는 K리그가 되기를 바라고 기대했습니다. 자신의 포지션이 아님에도 팀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고 최선을 다한 이윤의의 모습, 그리고 이러한 그를 위해 역시 필사적으로 뛴 다른 상주 선수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눈물 겨운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팀 분위기, 나아가 리그 전체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장면이 더 많이 나와 팬들을 다시 사로잡는 K리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던, 그래서 앞으로의 스토리가 더욱 기대됐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임시 골키퍼' 이윤의의 리그 데뷔전은 아주 특별하고 아름답고 위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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