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이라고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이 중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나’가 주인공이며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며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소설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점은 주인공의 구체적인 심리 묘사가 가능하므로 심리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작가와 등장인물,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가까워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동일시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밖에 알 수 없다.

주인공 ‘나’의 경험과 능력 범위 안에서 서술되고 전개되기 때문에 내가 본 것, 들은 것, 경험한 것 외에 서술할 수 없으며, 이야기의 전개 양상도 제한적이다. 나의 행동 범위가 곧 세계이며, 내가 생각하는 것이 세계의 가치관이다. 주인공 ‘나’의 생활 공간이 협소하고, 생각의 폭이 좁다면 독자도 협소한 공간과 생각에 갇혀 버린다. 내가 있는 공간의 제외한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2의, 제3의 인물을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면 알 길이 없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현재에 살고 있다면 소셜미디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거짓말 조금 보태-없을 것이다. 누구나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트위터를 하고, 블로그를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상과 의견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친숙한 일이다. 소셜미디어는 매력적인 가상 공간이다. 일상과 의견을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 시공간, 인종, 나이를 초월하며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응원할 수 있지만, 이 공간의 매력적인 것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살며, 어디에 가며, 무엇을 입고, 먹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한 장의 사진, 몇 줄의 글로 보여 줄 수 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편집되어 동경과 동시에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수많은 관람객이 생기고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소셜미디어 안에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나는 주인공이고,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관점이 모두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1인칭 주인공 시점만 존재한다. 진정,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 나. 라고 노래할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일상을 소개하고 자랑하며 즐길 수 있는 진정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세계다. 자랑질에 소질만 있다면 소셜미디어는 아주 괜찮은 가상의 세계이다. 또 자랑을 좀 하면 어떠냐 싶기도 하다. 다만 인증 샷이, 설정 샷이 도를 넘을 때 문제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장례식장 다녀온 사진을 올린 사람을 보았다. 사진 아래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고 그를 칭찬했다. 그런데 나는 사진이 불편해 댓글을 달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인증 샷으로, 화환을 중심으로, 장례식장 입구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장례식장이지만 슬픔과 무관해 보였다. 사진과 글의 초점이 상을 당한 상주에게 있지 않고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찾은 자신에게 있었다.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슬픔보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그곳을 다녀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오직 나, 나의 시점에만 관심이 있었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던 그의 글, 가치관, 생활이 더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로 그의 글을 찾아서 읽지 않게 되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고 싶은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빠져나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당신의, 그의 슬픔의 근원을,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의 행동과 표정을 통해 느끼고 공감하려고 애쓸 때 나의-당신의, 우리의- 일상이 극적인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을 수 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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