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지상파방송 자회사 12개 사업장 노동조합이 모여 ‘지상파 자회사 노동조합 협의회’를 만들었다. 경영 악화를 이유로 자회사를 통폐합하거나 자질검증이 안된 모회사 직원을 임기 말에 자회사 임원으로 보내고 수익이 나는 사업은 모회사가 회수하는 등 일방 통보식 소통에 자회사 노조는 처음으로 함께 목소리를 냈다.

지상파방송자회사노동조합협의회(이하 협의회)에는 EBS미디어, KBS미디어, KBS방송차량, KBS비즈니스, KBS아트비전, KBSN, iMBC, MBC아트, MBC C&I, MBC플러스, SBS I&M, SBS미디어넷 등이 함께했다. 이 중 절반 이상(7곳)은 본사 노조가 소속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속해 있으며 나머지는 아니다.

이들은 ‘모회사에 의한 일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뭉쳤다. 일명 '낙하산' 사장 임명, 모-자회사 간 합의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 통폐합, 자회사가 일궈낸 수익 사업 회수, 모회사의 간섭으로 인한 사업 중단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지상파 자회사 협의회 12개 사업장 중 6곳의 로고.

EBS, 자회사 'EBS미디어' 주요 수익 사업 회수

EBS가 전액 출자한 자회사 EBS미디어는 최근 모회사로 일부 사업이 회수됐으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앞두고 있다. EBS미디어는 ‘수익 창출형 콘텐츠 자회사’를 목표로 2012년 5월 출범했다. 출범 시 사업위탁협약을 통해 ‘방송권 국내유통, DVD, 단행본 출판, 캐릭터 라이선싱, 협찬 사업’ 등을 EBS로부터 이관받았으며 ‘EBS KIDS 채널 개국, 캐릭터 사업, 한글이 야호 등의 직영 출판, 키즈카페, 진로·직업 테마파크’ 등의 신규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모회사인 EBS는 사업위탁협약 재개정으로 사업 인력은 그대로 남겨둔 채 EBS IP를 활용한 단행본 출판, FM 교재 출판,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 공연, 오프라인 이벤트 사업 등 일부 사업을 회수해갔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EBS미디어분회는 “불공정한 위탁사업협약 재개정으로 EBS 콘텐츠 유통 자회사라는 EBS미디어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더불어 전 대표이사의 갑질 논란으로 새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들어간 EBS미디어 분회는 지난 14일 “조직에 대한 이해 없이 한 자리 때우다 가려는 인사에 대해 경고한다”는 성명을 냈다. EBS미디어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뚜렷한 비전을 가진 일하는 사장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EBS미디어 대표이사는 EBS 내 직원을 대상으로 공모받아 선임해왔다.

EBS미디어분회 관계자는 “EBS미디어는 대표이사 선임, 수익 사업 회수 등 당장 눈에 가시화되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있지만 다른 지상파방송 자회사 노조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져 처음으로 모여 공동 성명을 냈다”고 밝혔다.

‘MBC나눔’, 사업은 본사로 인력은 자회사로

MBC 자회사인 사회공헌기업 ‘MBC나눔’은 조만간 MBC본사로 통폐합될 예정이다. MBC나눔의 사회공헌사업은 MBC로 이관되지만 9명의 MBC나눔 소속 직원들은 자회사 MBC플러스로 옮긴다. 또한 MBC 자회사인 MBC아카데미가 MBC C&I로 합병된다는 설이 돌아 8개의 MBC 자회사 사이에서는 자회사 통폐합이 시작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iMBC의 경우, 지난해 업무 재조정 중 성장산업이었던 지상파연합 플랫폼 'POOQ'을 WAVVE로 출범시키면서 포털 클립서비스 사업을 이관받았다. 하지만 클립서비스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업으로 올해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절반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MBC 자회사 협의회 관계자는 “본사와 사업권을 조정하거나 통폐합 결정을 할 때 자회사를 제외하고 본사 위주로 논의된다. 하지만 3년 연속 적자인 본사 상황과 언론노조 MBC본부와의 갈등을 우려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15일 지상파방송 자회사 노조 구성원들이 첫 만남을 갖게 됐고 지상파 자회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해 성명을 냈다"고 말했다.

지상파 자회사 협의회에 뜻을 같이한 KBS 자회사 관계자는 “KBS에서는 아직 자회사간 통폐합이나 인수 등 가시화된 건 없다. 하지만 자회사 임원 인사를 자리 나눠먹기처럼 이용하고 이마저 1년 만에 바뀌거나, 돈이 될만한 사업을 키워놓으면 본사가 가져가는 등 앞서 있어왔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사람 사는 회사라는 걸 호소하고 싶어 공동성명서에 함께 이름을 올렸을 뿐 다른 뜻은 없다”며 “어려운 경영위기를 타개하려면 본사는 자회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결정보다는 자회사 직원들과도 같이 협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회사 정책에 따라 합병되는 SBS 자회사

SBS 사정은 다르다. SBS에서는 지난해부터 SBS콘텐츠 유통을 담당해온 계열사들을 SBS 자회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언론노조 SBS본부가 주장해온 ‘SBS 정상화’의 일환이다. SBS본부는 S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 계열사를 통해 유통되면, 그 수익이 SBS가 아닌 대주주 태영건설 측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SBS콘텐츠허브’가 SBS 자회사로 편입됐다. SBS콘텐츠허브의 종속회사였던 SBS I&M은 자동으로 SBS의 손자회사가 됐다. SBS I&M은 웹 에이전시로 SBS 홈페이지 운영, 유튜브 VOD클립 광고 등을 맡아왔지만 방송 하이라이트 클립 사업이 SBS로 넘어가는 등 SBS 본사와 기능 조정 중에 있다.

SBS I&M 관계자는 “본래 주 수입원이 광고 수익이었는데 사업 영역이 조정되면서 올해 적자구조가 됐다”며 “현재 해당 사업으로 벌어온 비용 보전을 어찌할지 SBS와 협상 중이지만 손회사다보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비상경영을 해야하는 SBS의 상황도 이해되고, 정상화를 위한 SBS본부의 취지도 이해되기에 자칫 노노갈등(본사노조-자회사노조)이 될까 목소리를 내기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SBS 계열사인 ‘SBS미디어넷’ 자회사 ‘SBS플러스’가 SBS로 인수 결정됐다. SBS는 지난 20일 이사회에서 ‘SBS플러스 인수’를 결의했다며 드라마/예능 중심의 준종합 편성 채널인 ‘PLUS’와 예능 전문 채널인 ‘funE’를 직접 보유해 편성과 제작은 물론 마케팅, 사업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인 협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SBS미디어넷 관계자는 “SBS미디어넷 내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내온 SBS플러스가 SBS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어 직원들이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게 가장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본사가 잘돼야 계열사 및 자회사들도 잘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SBS 본사 직원뿐 아니라 계열사, 자회사 직원들의 목소리도 함께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회사노조협의회 공동성명 “자회사에도 사람이 있다”

지상파 자회사 노동조합 협의회는 25일 처음으로 공동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방송 경영환경 악화의 피해가 자회사에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다”며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수탈당하고 있다”고 했다.

협의회는 “모회사 수익 극대화라는 사업 달성을 위해 말 잘 듣는 임원을 자회사로 내려보내는 일 또한 필수”라며 “그동안 자회사 임원의 자리가 정년연장과 커리어 관리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구멍 난 배의 신속한 난파가 그들의 목표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협의회는 “모-자회사 관계에서 자회사는 언제나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 당해왔다”며 “자회사는 오로지 모회사의 수익 다각화 등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미래에 꿈과 희망을 건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로서의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회사 대 회사로의 존중은 있어야 한다며 “여기도 ‘사람’이 있다”고 호소했다.

협의회는 ▲모회사에서 관례적으로 내려오는 자질 검증 안 된 임원의 인사를 규탄한다 ▲불합리한 사업위탁협약 등과 같은 모회사의 횡포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자회사 통폐합은 생존의 문제이며 살기 위해 행동한다 등 세 가지의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아래는 지상파 자회사 노동조합 협의회 공동성명서 전문이다.

<지상파 모-자회사 갑을관계에 대한 호소>

방송 경영환경 악화로 지상파들이 각자 살 길 찾아 나서기에 바쁜 가운데, 그 피해가 을인 자회사에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다. 쉽게 말해 잘 나갈 때 수익 다각화 등을 목표로 만든 자회사를 이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니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제일 먼저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 수탈의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사업을 막는 것은 다반사고, 모-자회사간 합의도 법인 간의 계약일 텐데 절차 무시하고 휴지조각으로 반들어 버리기도 하다. 모회사가 어려워질수록 자회사가 알토란 같이 일구어 놓은 사업을 회수해간다거나, 사업 분야도 다른 자회사끼리 통폐합 해버리는 수난까지 벌어지고 있다.

모회사 수익 극대화라는 과업 달성을 위해서는 말 잘 듣는 임원을 자회사에 내려보내는 일 또한 필수다. 그 동안 자회사 임원의 자리가 정년 연장과 커리어 관리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구멍 난 배의 티 안 나고 신속한 난파가 그들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서서히 차오르는 물을 퍼내기에도 버거운데 선장이라는 사람은 어서 배가 좌초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완전히 적과의 동침이 따로 없다.

모-자회사 관계에서 언제나 자회사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 당해왔다. 이제까지는 억울함을 어딘가에 호소하고 싶어도, 다른 식으로 돌아올 갑의 횡포가 무서워 입을 닫아야 했다면, 더 이상은 그 횡포가 극에 달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외치고 싶다. “여기도 ‘사람’이 있습니다!” 자회사는 오로지 모회사의 수익 다각화 등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도 조직의 미래에 꿈과 희망을 건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료로서의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회사 대 회사로서의 존중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지상파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서로 아픔을 나누며 미래를 위해 연대할 것을 약속한다.

1. 모회사에서 관례적으로 내려오는 자질 검증 안 된 임원의 인사를 규탄한다.

2. 불합리한 사업위탁협약 등과 같은 모회사의 횡포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3.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자회사 통폐합은 곧 생존의 문제이며, 우리는 살기 위해 행동한다.

자회사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동반자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면, 지상파는 더 이상 언론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2020.05.25.

지상파 자회사 노동조합 협의회

EBS미디어, KBS미디어, KBS방송차량, KBS비즈니스, KBS아트비전, KBSN, iMBC, MBC아트, MBC C&I, MBC플러스, SBS I&M, SBS미디어넷(이하 노동조합 명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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