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원불교 교무] 공교롭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2008년에 나는 인생의 격랑에 휩쓸리다 만덕산과 인연이 되어 원불교에 출가했다. 그리고 이듬해 정초에 미륵산 아래 구룡마을로 자리를 옮겨 좌산 이광정 종사님을 모시게 되었다.

당시, 살아있는 권력은 힘 잃은 구 권력을 야멸차게 몰아붙였다. 노건평 구속, 박연차 구속,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구속,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구속, 강금원 구속, 조카사위 연철호 체포, 아들 노건호 씨 검찰 출석, 권양숙 여사 소환 조사,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구속,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사진 출처 노무현재단

원불교 최고지도자를 역임하셨던 좌산종사께서는 사면초가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을 만나 힘이 되어주고자 하셨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끝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햇살 곱던 이른 아침에 하루 일을 논의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속보를 접하고서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벙어리가 되었다. 마주앉아 계셨던 분은 비보를 듣자마자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이런 식으로 홀연히 세상을 등질 줄 미처 몰랐다.

이십대의 나는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으면서도 참여정부는 어떻게든 부동산투기를 막아내고 마땅히 사교육을 규제하며 당연히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버블세븐이라 불리는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을 중심으로 한 집값 폭등과 치솟는 사교육비, 이라크 파병 결정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나는 모순덩어리였다. 겉으로는 투기세력을 이기지 못하는 정권을 무능하다며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모님이 마련하신 서울 주택가격이 많이 오르자 은근히 언젠가 덕 볼 날이 오리라 기대하는 나였다.

공교육이 살아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남보다 앞서려는 욕심과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에 휩싸여 고등학생 시절에는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고 대학생이 되자 어학연수를 가야 한다며 떼를 썼다. 과외선생자리를 알아보기까지 했다.

“군자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이것이다’ 하는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이것은 아니다’ 하는 것도 없다”는 논어에 담긴 공자님 말씀을 외우면서도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의 노예가 되어 한국이 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는 데 게을렀다.

해마다 5월 23일 그의 기일이 되면 고요히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 안의 모순된 욕망을 모르고 발버둥치다 엉뚱하게 남을 탓하고 있지는 않는지 극단적 견해에 치우쳐 있지는 않는지 고정된 관념에 매어있지는 않는지 자성한다. 이것이 내가 노무현,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 상여 뒤에 따라가 보면 그 사람의 진·강급 여부를 알 수 있다. 모두 ‘아까운 사람 갔다.’고 하면 진급 될 것이요, ‘잘 갔다.’고 하면 강급 될 것이다." - 원불교 ‘한 울안 한 이치’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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