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내정이 아니라 강행이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명박 대통령 정치특보를 지낸 최시중씨(전 한국갤럽 회장)가 내정된 것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언론시민단체들과 야당이 ‘반대의사’를 누누이 밝힌 최 내정자를 굳이(!) 방통위원장에 앉힌 것 -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내정일지 몰라도 ‘반대편’에서 보면 강행이다.

꼼수도 읽힌다. 최시중씨 방통위원장 내정은 이미 일찌감치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발표를 늦추더니 통일·환경부 장관을 내정할 때 ‘슬쩍 끼워’ 발표했다. 겉으로는 최씨의 방통위원장 임명에 고민을 한 모양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최씨에 집중되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꼼수적 성격’이 강하다.

▲ 경향신문 3월3일자 24면.
3일자 대다수 신문, 담합한 듯 ‘꿀먹은 벙어리’

사실 이런 얘기 하는 것도 좀 지겹다. <미디어스>는 최씨의 방통위원장 내정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직후부터 왜 최씨가 방통위원장에 적합하지 않은 지를 집중적으로 강조해왔다. 비단 <미디어스> 뿐만 아니라 언론시민단체들의 주장도 비슷했다.

‘KBS 이사를 선임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임원 임명권을 갖고 있으면서 정책과 규제를 통해서도 방송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방통위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 직속기구로 되어 있는 점 그리고 위원장에 대통령 최측근을 앉힐 경우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 등이 반대의 이유였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청와대와 최 내정자 반응은 좀 어이가 없다. “최 후보자가 언론계에 24년 간 재직했고, 신문·통신·방송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국민 여론을 수렴해왔다.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둔 균형 감각을 토대로 방송과 통신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중립적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청와대) “방통위는 엄격한 중립을 지키도록 시스템이 돼 있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 (최 내정자) 정도다.

방통위가 중립적인 시스템 하에 있다는 최시중 내정자

반대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대답을 삼간 채 ‘딴소리만’ 해대고 있는 것이다. “방통위가 엄격한 중립을 지키도록 시스템이 돼 있다”는 최 내정자의 ‘주장’도 ‘딴소리’인 건 마찬가지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있는 데다 정부·여당 몫의 위원 수가 5명 가운데 3명, 거기에다 위원장이 대통령 최측근인 방통위에 무슨 ‘엄격한 중립을 지키는 시스템이 돼 있다’는 소린가. 최 내정자가 말하는 중립은 대체 어떤 중립을 얘기하는 것일까.

상황이 이런데도 최씨의 방통위원장 내정을 강행한 데 따른 비판의 목소리를 오늘자(3일) 신문지면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경향신문이 만평과 ‘미디어면’에서 이를 비판했고, 한겨레가 기사와 사설에서 최씨의 내정 강행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게 고작이다. 잠깐 한겨레 사설을 보자.

▲ 한겨레 3월3일자 사설.
“며칠 전 최씨의 방통위원장 내정설이 전해진 이후 언론계 안팎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거세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최씨 지명을 강행했다. 방송·통신을 장악할 수 있다면 어떤 여론에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언론과 이명박 정부의 카르텔이 낳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사실 ‘어떤 여론에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라는 부분은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대다수 언론이 최씨의 방통위원장 내정소식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면 과연 이명박 정부가 ‘어떤 여론에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2일자 방송사들이 야당의 입을 빌어 최 내정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3일자 신문들은 마치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대다수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말이 침묵이지 이 ‘침묵’의 소리 이면에 향후 진행될 미디어 시장 재편 과정에서 ‘이떤 이득을 취할 것인지’ 주판알을 열심히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차피 강행될 거,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건가. ‘적극적 공생’과 ‘소극적 침묵’으로 구분을 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침묵의 카르텔에 동참해서 자사의 이득을 취하겠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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