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한나라당 최고위원 선출 투표에서 친박계가 지지한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고 범친이계로 분류되던 나경원, 원희룡 의원이 3, 4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 홍준표 한나라당 신임 대표ⓒ연합뉴스
대다수의 언론과 평론가들이 홍준표, 원희룡 의원의 양강구도, 또는 홍준표, 원희룡, 나경원 의원의 3강구도를 점쳤었다. 당시 나는 미디어스의 칼럼을 통해 홍준표, 나경원의 양강구도를 예상한 바 있는데, 어쨌든 모두 빗나가버린 셈이지만 이 정도의 결과라면 당시에 내가 했던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투표 결과를 보면 전당대회 룰을 고려할 때 친이계가 유력하게 검토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이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거인단과 전당대회 대의원의 직접투표로 구성되는 표는 ‘조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반면에 전체 투표의 30%에 할당되는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경우는 극복할 수 없는 일종의 ‘상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소위 친이계 세력이 바보가 아니라면 여론조사 결과가 높게 나오는 후보에게 베팅을 하고 ‘조직표’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이계 핵심들은 여론조사 결과가 별로 높게 나오지 않는 원희룡 의원을 선택했다. 나는 나경원 의원과 원희룡 의원의 개인 의사야 어찌됐든 이번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친이계의 몰락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원희룡 의원이 나경원 의원에 비해 가지는 비교우위는 사무총장 등의 역할을 통해 보다 나은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청와대와 박근혜 전 대표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런 장점은 소위 ‘핵심’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21만명에 이르는 선거인단과 8천 8백명의 전당대회 대의원, 그리고 여론조사에 응하는 일반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는 아니었다.

실제 원희룡 대 나경원이라는 차원에서 투표결과를 가지고 검증해보아도 친이계 핵심들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 한나라당 전당대회 득표 현황
이 투표에서 원희룡 의원은 자기에게 유리한 모든 것을 가졌고 나경원 의원은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원희룡 의원은 '5인회동설' 등을 통해 친이계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으며 홍준표 의원과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최선의 선거구도를 갖고 있었다. 반대로 나경원 의원은 여성할당에 의해 꼴찌를 해도 최고위원직이 보장되므로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상당수의 표가 빠져나가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위기에 몰려있었다. 거기다가 투표하는 날에 비가 많이 왔다. 투표율이 낮다면 친이계가 조직적으로 원희룡을 지지하므로 상대적으로 조직세가 없는 나경원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는 차이이긴 하지만 나경원 의원이 원희룡 의원을 앞섰다는 것은 원희룡 의원이 불출마를 하거나 나경원 의원으로의 단일화에 합의했을 경우 나경원 의원이 실제로 홍준표 의원과 양강구도를 만들거나 최소한 유승민 의원까지 쳐서 3강구도 안에는 들어갔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산수를 해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득표수를 보면 나경원 의원이 원희룡 의원만큼만 조직표를 획득했다면 여론조사표를 합쳐 약 3만 7천표를 획득하여 약 3만 2천표를 득표한 유승민 후보를 제치고 2위를 했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앞서 말한 ‘여성후보 핸디캡’까지 고려하면 더 높은 득표를 가정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 원희룡 의원은 총선도 출마 못하고 서울시장도 출마 못하고 한동안은 완전히 망한 처지가 됐지만 나경원 의원은 어쨌든 어떤 계파의 지지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3등은 할 수 있는,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셈이 됐다.

하여간,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니 이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거의 대다수의 언론이 이제 한나라당의 무게중심이 박근혜 전 대표로 급속하게 쏠릴 것이라는 점을 전망하고 있는데 아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지도부의 절대다수가 내년 총선에서 기사회생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이 필수적이므로 친박계를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범친이계로 분류된 원희룡 최고위원이나 나경원 최고위원도 비슷한 입장이다.

오히려 문제는 홍준표 신임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홍준표 특유의 스타일도 문제지만 이것만으로는 홍준표 대표의 향후 행보를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홍준표 대표의 ‘계파는 해체되어야 하고 계파활동을 하는 사람은 공천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취임 일성이다.

언뜻 보면 친박, 친이가 갈려진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꺼낸 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공천권’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 지도부가 수행해야 할 제 1의 목표는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공천개혁을 어떻게 하느냐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희룡 의원이라면 자신의 총선불출마를 이용해 ‘세대교체론’을 의제화 하고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공천개혁을 하려 했을지 모른다. 나경원 의원의 경우는 ‘국민경선제’ 라는 방법론이 이미 브랜드화 되어있다.

하지만 홍준표의 공천개혁은 이런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는 ‘바람은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1954년생인 그의 정치 시간표는 다음 대선이 예정된 201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그가 당권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조직’을 만드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공천권을 매개로 한 줄세우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필연적으로 모두를 불만스럽게 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양대 계파의 상호 견제 속에 묵인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상황에서 짚어보아야 할 것은 반박(反朴) 최후의 진지인 이재오계의 행보다. 원희룡의 패배로 이들은 상당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총선을 전후로 해서 마지막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당장 이재오 특임장관이 8월 정도에 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단언하는 것이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홍준표 대표가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이재오 특임장관도 유력 대선주자로서 예우하겠다”고 밝힌 대목을 기억해놓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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