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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 끝나지 않은 5월 광주, 젊은 감독이 ‘김군 찾기’에 나선 이유[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5.20 10:54

[미디어스=이정희]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시간, 금남로를 물들였던 광주 시민들의 고귀한 피는 역사 속에 그 이름값을 제대로 얻고 있을까? MBC는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젊은 감독 강상우가 추적한 '김군'이란 시민군의 행방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방영했다. 

2018년 만들어진 <김군>은 그해 44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 2019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고 파리한국영화제에 초청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김군>. 왜 평단은 시민군 김군의 행방에 초점을 맞춘 젊은 감독의 영화에 박수를 보냈을까? 그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 우리 역사의 자리매김 때문이다. 

김군이 광수라고?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김군이 광수라니? 얼굴이 전면에 드러난, 몇 안 되는 시민군의 사진 가운데 김군이라고 쓴 띠를 두른 한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이 광수란 말인가? 아니다. 여기서 '광수'는 광주에 온 북한특수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광주에 북한 사람이라니?

전 육군대령 출신의 극우인사 지만원 씨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일군의 노령층 지지자들 앞에서, 광주에 시민군은 없었으며 광주 민주화 동은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일으킨 폭동이라 주장한다. 북한군의 폭동에 광주 시민들이 부역했다는 것이다. 

지만원 씨는 이른바 범죄 증명 과정에서 지문분석 등에 쓰는 기하학적 분석 방법에 따라 5‧18 광주 시민들 가운데서 이른바 '광수' 561명을 찾아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복면을 주로 사용했으며, 특히 2010년 북한 노동자 회관에서 벌어진 기념식 앞줄에 앉은 세 사람 중 한 사람, 김창식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군이라는 것이다. 

진짜 김군을 찾아서 

2014년 지 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런 주장을 세상에 드러냈다. 이에 5.18유족 모임은 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지씨가 '광수'의 대표적 근거로 내세운 김군이라는 실제 인물을 찾기에 나섰다. 

25차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김영택 씨는 20여사단 등이 광주를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의 부대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라며 반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여전히 광주 트라우마센터에서 아픈 상처를 치료받는 양동남 씨. 당시 19살이었던 양동남 씨는 지만원 씨에 의해 ‘36 광주’라 명명된 장본인이다. 양동남 씨는 북한군이 600명씩이나 광주에 왔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국방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겨우 19살이었던 시절, 어떤 민주화 의식이 아니라 사진 속에 보여진 리어카에 실린 2구의 시신, 그렇게 일반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민주화 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라 밝힌다. 

5월 15일 신군부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이 확대된 상황에서 5.18일 광주 금남로에 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피로 물들여진 금남로, 그 현장으로 목도한 광주 시민들은 떨쳐 일어났다. 'M16'으로 시민을 쏘는데 돌팔매질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시민들. 그중에서도 군대에 다녀와 총기를 다룰 줄 알았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화순, 나주, 함평을 돌며 칼빈, M1 소총을 털어와 무기를 들었다. 총기까지 든 상황 얼굴이 알려지면 훗날 처벌이 두려워 복면과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고 당시 19살이던 32광수 정희문 씨는 그때를 떠올린다. 그런데 북한 특수군이라니!

그렇다면 그렇게 스스로 복면과 마스크를 쓴 시민군들 사이에서 얼굴이 드러난 김군 사진들은 어떻게 찍혔을까? 그 사진을 찍은 당사자는 당시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이창성 씨다. 계엄군과 시민군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담을 수 없었던 이 기자는 외곽에 나가 시민군에게 사정을 해서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몇 장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면에 얼굴이 드러난 김군은 누구일까? 당시 만삭으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제공했던 주옥 씨는 김군이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막걸리 왕대포 시음장에 자주 들르던 사람인 듯하다고 증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당시 원지교 다리 밑에 모여 살던 7, 8명의 젊은이 무리 중 하나. 그들은 고아들로 천막을 치고 살며 넝마를 주워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렇게 넝마주이를 하던 젊은이들이 시민군에 적극 활동했지만, ‘넝마주이’란 신분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들에 대한 포상 명단에서도 배제되거나 소외되기가 십상이라 김군에 대한 추적은 더욱 쉽지 않다. 

당시 23살이었던,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당시의 청년은 울분과 열정의 마음에서 떨쳐있어나 총을 든 상황에서 한가롭게 '어디 살아요?'를 물을 수 있었겠냐고, '이름이 뭐예요?'라고 할 수 있었겠냐고 씁쓸하게 말한다. 나가면 시체로 돌아오는 상황, 시체 냄새가 진동해서 밥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 매일을 보냈던 그 시절의 동지였지만 그들은 서로 누군지 모른다. 

김군이 탑승했던 트럭은 도청에 무기를 반납하러 가는 상황이었다. 김군이 반납한 걸로 추정된 캐러번 50. 총기를 반납한 5월 23일 이후 김군은 더이상 당시의 사진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나와 증언을 한 최진수 씨는 자신이 연행되었던 장소에서 김군이 사살되었다고 증언한다. 5월 24일 계엄군 간 오인 사격으로 군인이 사망하자 그 보복으로 무차별 총살이 벌어졌다. 최진수 씨는 김군이 그 희생자라 밝힌다. 툇마루에서 자신에 앞서 발을 먼저 내디뎠다는 이유만으로 관자놀이에 총을 쏜 군인들, '그 눈을 봤습니다'라며 최진수 씨는 38년 동안 묻어둔 한을 비로소 꺼내 놓는다. 

끝나지 않는 상흔

40년은 매우 긴 시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지난 2월 실형 판결을 받고도 지만원 씨는 여전히 “5.18은 북한 간첩이 일으킨 폭동”이라 주장하고 있다.

강상우 감독이 만난 그 시절의 시민군은 이제 와 사진 속 사람을 찾는 거, 그래서 김군이 진짜 김군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거, 이거야말로 역사에 대한 '역행' 아니냐고 묻는다. 이제는 그 시체 썩던 냄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다시 그 기억을 소환하면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하는 역사의 주역은 가슴이 아프다. 안 받아들여도 좋으니, 왜곡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조적으로 덧붙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어렵게 살다 힘들게 내린 결단이었다고 말하는 이장갑 씨. 하지만 훗날 체포되어 김일성이 무슨 지령을 내렸냐, 김대중에게 얼마를 받았냐며 고문당했던 기억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이제 기억조차 흐릿하다고 안타깝게 말한다. 

당시 20살이었던 최영철 씨는 이제 택시 운전을 한다. 다른 곳은 다 괜찮지만 체포된 곳을 지날 때면 여전히 새삼스럽고, 눈물이 글썽거려지는 걸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2년 선고를 받은 김용균 씨는 당시 도청에 들어간 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모두 못하게 되니 그 이후의 삶이 후회로 남는다고 고개를 떨군다. 당시 21살이던 박인수 씨는 여전히 다 빼내지 못한 총알을 원래 아픈가 보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오월 얘기는 그만하자는 시민군들.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사람들은 여전히 약을 안 먹으면 잠을 잘 수 없다. 이발소에서 이발사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혼자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니. 아직도 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다시 한번 그들을, 그들이 살아남아서 미안하다고 삼키는 죽은 동료들을 음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보수'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존재한 역사를 거스르려는 그 '망언'과 '망발'은 이미 저만치 굴러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향한 돌팔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돌팔매에 자신의 생을 바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는다. 

부디 역사에 용기를 낸 사람들에 대해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시대가, 세대가 될 수 있기를. 오죽 답답했으면 젊은 감독이 ‘김군 찾기’에 나섰을까. 여전히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 '노망'든 이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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