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주말 'n번방 방지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인터넷업계와 시민단체들이 국회와 정부에 해당 법안의 졸속 추진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n번방 방지법'을 반대한 바 없으며 쟁점은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라는 입장을 내놨다.

시민사회는 오히려 n번방 방지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해왔으나 국회가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법안과 n번방 방지법안을 하나의 법안으로 묶어 논의한 탓에 이 같은 프레임이 생성됐다고 비판했다.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생경제연구소, 사단법인 오픈넷, 소비자시민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등은 국회 앞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동통신 공공성 포기하는 인가제 폐지 법안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17일 언론에서는 오픈넷, 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인터넷업계와 시민단체가 n번방 방지법에 반대하는 공동의견서를 국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실제 이들 단체는 이날 '방송통신3법 졸속추진에 대한 스타트업·소비자시민단체 공동의견서'를 관련 기관에 제출했다.

'방송통신3법'은 각각 'n번방 방지법' '넷플릭스 규제법' '데이터센터법' 등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상 개정안을 일컫는다. 'n번방 방지법'은 인터넷 사업자에게 디지털성범죄물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넷플릭스 규제법'은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에게 인터넷 서비스 품질유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데이터센터법'은 기업들이 운영하는 민간 데이터센터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규정하자는 내용이다.

이들은 공동의견서에서 "해당 법안들은 대기업 이동통신사를 제외한 다수의 인터넷기업과 스타트업 기업, 소비자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이 '각각'의 이유를 들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 법안들"이라며 "해당 법안들에는 전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과 이동통신사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 소비자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높은 내용, 국내 인터넷·스타트업 기업에게 상당히 모호한 의무와 책임을 강제하는 내용이 뒤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언론 등지에서는 n번방 방지법에 인터넷 업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역시 사적 검열 논란 등으로 반대에 나섰다는 보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18일 참여연대는 "일부 언론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통신신소비자시민단체들이 마치 n번방 법안을 반대하고 디지털 성폭력물 등의 유통을 규제하는 법안의 처리를 저지하려고 한다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통신소비자시민단체들은 n번방 방지법과 함께 묶여 통과된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법안을 반대하는 것이지, n번방 방지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속한 처리를 촉구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처리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위원장 대안)'은 크게 ▲요금인가제 폐지(제28조)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불법촬영물에 대한 유통방지 조치의무 등 부과(제22조의5)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제22조의7) ▲국외 부가통신사업자의 국내대리인 지정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도매제공의무제도의 유효기간 연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은 28조인 요금인가제 폐지에 관한 내용으로, 그 외의 내용은 n번방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 찬성하고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는 게 참여연대 입장이다.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웅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여연대는 이 같은 프레임이 생성된 원인이 과방위의 법안처리 방식에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와 내용, 법안 제출자도 다른 n번방 방지법안과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법안을 '위원장 대안'이라는 하나의 법안에 담아 통과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를 "시민단체들이 요금인가제 폐지법안을 반대할 경우 자칫 n번방 법안까지 무산될 수 있도록 '꼼수'를 부려놓은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11일 통신소비자시민단체들과 함께 각 의원실 면담과정에서 요금인가제 폐지와 n번방 방지법안이 하나의 법안에 묶여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두 법안의 분리를 요구했다고도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국회는 이동통신사들의 민원 법안과 n번방 법안을 묶어서 처리하려는 꼼수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위원장 대안으로 제출되어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서 n번방 법안은 분리하여 즉각 처리하고 인가제 폐지 법안은 철회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오픈넷, 민생경제연구소 등 통신소비자시민단체들은 19일 국회 앞에서 요금인가제 폐지 법안 졸속처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은 과방위를 통과한 요금인가제 폐지 법안을 '이동통신요금 인상법'으로 규정했다. 현행 요금인가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거나 기존 요금제를 인상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요금심의위원회를 거쳐 장관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정부 인가를 받은 수준이 가격 정적선으로 인식되고 나머지 사업자들이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신고한다.

한국 이동통신 사장의 경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의 시장점유율이 90% 가량을 차지하는 사실상의 독과점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이동통신 요금제는 1위 사업자인 ST텔레콤이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으면 이를 기준으로 KT, LG유플러스가 유사한 수준의 요금제를 신고해 일종의 요금담합 현상이 빚어진다.

국회는 요금인가제를 이통3사 요금담합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요금인가제 폐지를 통해 이통3사의 통신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현행 요금인가제와 통신요금 경쟁은 무관하다는 게 시민사회의 비판이다. 가격 경쟁을 위해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을 인하하거나 2,3위 사업자인 KT, LG유플러스가 요금을 인하할 때에는 신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요금인가제와는 무관하다는 지적으로 근본원인은 독과점 시장과 암묵적 담합에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요금인가제가 부족한 측면이 있지만 이통3사의 무리한 통신요금 인상을 막는 장치로써 기능해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가심의를 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18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요금인가제 폐지 법안은 실익도 크지 않고 이통사 특혜성 법안이 될 수 있어서 n번방 법안은 처리하고, 인가제 폐지 법안은 애초에 올리지 말라고 과방위에 요구해왔다"며 "그런데 과방위에서 그걸 묶어 올리다보니 저희가 인가제 폐지 법안을 반대하면 n번방 방지법도 같이 무산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팀장은 "어제 공동의견서를 낸 통신소비자 시민단체측에 확인했는데, 최소한 거기 있는 시민단체들은 n번방 방지법 처리에 찬성입장이다. 인가제 폐지만 반대하는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 보완하는 한이 있더라도 n번방 방지법은 처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