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로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간 모양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중재로 합의안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경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에서 합의안에 약간의 수정을 거치자 순식간에 검찰조직이 대혼란에 빠져 결국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 분배 문제는 검찰 조직이 처음 만들어지던 1950년대부터 있었던 논란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틈만 나면 경찰과 검찰이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는 일종의 방아쇠로 작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스폰서 검사'니 '그랜저 검사'니 하는 사건들로 검찰 조직에 대한 개혁 여론이 들끓자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경찰 쪽이었다. 검찰 개혁 의제에 검찰조직에 비판적인 야권을 통해 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를 슬쩍 얹은 것이다.

▲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 문제로 사퇴 의사를 밝힌 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고 있다.ⓒ연합뉴스
수사개시권 명문화 자체는 논리적으로 크게 문제 삼을만한 부분이 없지 않느냐는 게 중론이다. 검찰 측도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50년간 이어져온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의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명백한 경찰의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많은 경우에 경찰은 임의대로 수사를 개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이 존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경찰 주장대로 그저 순수한 의미의 수사를 개시하는 권한만 명문화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므로 검찰 입장에서는 그것을 주장하는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이 던진 묘수는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되 경찰의 수사 자체는 원칙적으로 검찰이 지휘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경찰의 수사개시권과는 미묘하게 포인트가 다른 '내사'와 '모든'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내사'와 '모든'에 대한 논쟁은 합의안의 '검사가 모든 수사를 지휘 한다'의 '모든'이 지시하는 범위에 '내사'도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이 논쟁의 핵심인데, 무원칙하고 임의적인 내사는 불특정다수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는 검찰 측의 원칙에 대한 논리와 내사까지 검찰이 '미주알고주알'하면 현실적으로 수사를 하기 어렵다는 경찰 측의 효율성에 대한 논리가 모두 일리가 있는 듯이 보인다.

결국 '모든'의 범위를 포함하여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방법과 룰에 대한 것은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검찰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어차피 검찰 조직 자체가 법무부에 소속하므로 검찰이 룰을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에서 이 합의안을 다루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법사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므로 잠깐 설명하자면, 법이라는 것은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도 그 효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각 상임위에서 성안된 모든 법안은 법조계 전문가 출신들이 모여 있는 상임위인 법사위에서 입법의 취지에 맞도록 체계, 형식과 자구에 대한 심사 등의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검경합의안도 마찬가지로 여기서 정리된 형태로 본회의에 상정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바꾼 것이 검찰에게는 충격적인 결과로 다가오게 됐다. 왜냐면 대통령령이라는 것은 결국 국무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 시행령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지휘 방법에 대해 경찰이 소속하는 행정안전부와의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법무부령이든 대통령령이든 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법무부령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야당과 경찰 출신 의원들에 의해 합의안의 '모든'은 삭제되고 법무부령은 대통령령으로 바뀌는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에 비춰보면 법사위의 이러한 결정이 경찰 측의 반발과 이에 대한 타협으로 인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결국은 밥그릇 싸움과 이를 중재하려는 어설픈 노력의 결과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일 이것이 그 자체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졌다면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도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게 그런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을 남겨놓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첫째, 결국 논의의 흐름은 검찰의 권한이 비대하므로 검찰의 권한을 빼앗아 경찰에게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갔는데 검찰이나 경찰이나 힘없는 사람을 수사하는 데에는 인권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방향의 논의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정 검찰의 권한을 빼앗아 경찰에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겠다면 영미식의 ‘자치제 경찰제도’ 등의 경찰을 통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양측의 입장을 봉합하느라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이것 자체가 법리적으로 자연스럽지 않다는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 등의 주장은 재판에 관한 세부절차는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고 수사에 관한 절차는 ‘시행규칙인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인데, 수사에 관한 절차를 시행규칙의 상위명령에 해당하는 시행령으로 정하면 재판에 관한 세부절차도 마찬가지로 조정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 규칙을 제정하는 기관들 간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셋째,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문제일 때에는 검찰 편을 들고, 검찰이 문제일 때에는 경찰 편을 드는 핑퐁게임으로는 영원히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나 싶다. 검찰과 경찰이 권한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굳이 논의하지 않아도 각각의 내부체계에서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장치를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고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관전자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권이 양쪽이 다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지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틀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떤 개혁을 이루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제도와 장치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