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대기 취재’라는 공상과학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변명에는 공상과학드라마로 맞설 수밖에 없다.

어렸을 적 볼거리가 극히 적었던 시절, 아이들에게 우상이었던 외화드라마의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이다.

디지털영상기술의 발전으로 우주 로봇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요즘과는 달리 무한 능력 소유자들인 그들은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뚜 뚜 뚜’라는 소음을 내며 빨리 달리고, 먼 거리에 있는 물체도 잡아당겨 식별할 수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충분히 알아먹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달리고 보고 듣고’에서는 따라갈 자가 없었으며 사용가능한 힘은 탁월했다.

게다가 이들의 능력은 하나같이 악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됐다. 그래서 열광했고 방송되는 날, 광장을 뒤로하고 집의 TV 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권선징악 놀이가 집 안에서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600만불의 사나이였다.

그 때는 7, 80년대쯤 된다.

현재 성인을 넘어 마흔 중반을 향하는 지금, 600만불의 기자들을 만나게 됐다. 문틈 사이 귀대기 취재로 녹취록을 작성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반갑지 않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귀대기 취재의 결과물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선교 의원에게 건네진 것은 600만불의 기자가, 그들이 속한 KBS가 할 짓이 못된다. 공익과 공공을 위해 사용할 힘을 자신들을 위해 썼다. 환영할 수 없다. 아니 지탄의 대상이다. 도청만 아니면 문제 없다는 식의 그들의 변명, 취소한의 양심도 저버렸다. 어린 적 동경의 대상이 재림했으나 알맹이가 빠진 모습만 봤다.

600만불 기자의 능력이란 애당초 없었다. 지어낸 말이다. 4일 한겨레보도에 따르면 KBS 수신료 인상 논란으로 촉발된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도청 의혹과 관련해 경찰은 “회의 녹취록은 이른바 귀대기로 작성된 게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경찰의 판단은 과학적 결과에 따른 것으로 귀대기 취재로는 녹취록 작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KBS는 경찰의 결론으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600만불의 기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만 밝히면 바라는 대로 KBS의 책임을 털 수 있다.

냉정하게 모든 것을 밝혀 털어내는 것과 600만불의 기자를 밝혀내는 것, 어떤 것이 쉬울까? KBS가 수신료를 들여 600만불의 기자를 급조할 가능성을 우려하게 된다. 반대한다. 600만불의 기자가 공공과 공익을 위해 취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600만불의 기자를 봤지만 그는 정의롭지 못했다.

국민이 부여한 힘을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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