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3>가 개봉하자마자 폭발적인 흥행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표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얼마 전 개봉했던 <엑스맨>만 하더라도, 개봉 첫 주말에 그리 어렵지 않게 표를 사서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트랜스포머3>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남은 표들은, 스크린 바로 앞에서 보는 좌석들뿐이다. 결국 이번 주말에 <트랜스포머3>를 보겠다는 원대한 야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트랜스포머3>는 왜 이렇게 폭발적인 흥행을 하는 것일까?

영화 흥행은 개봉하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때부턴 영화 자체의 내용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개봉하자마자 흥행이 터지는 것은 영화의 내용과 상관이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대감이다. 기대감이 충족되면 차후에 좋은 입소문이 퍼지며 흥행세가 견고하게 이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입소문과 함께 흥행의 뒷심이 사라진다.

지금의 폭발적인 초기 흥행은 한국 사람들이 <트랜스포머3>에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트랜스포머3>라는 개별 영화가 아니라, <트랜스포머> 시리즈라는 브랜드가 주는 기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어떤 기대감을 한국 관객에게 주었을까? 여기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어렸을 때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을 자극한다는 등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트랜스포머>가 주는 기대감은 간단하다.

이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화끈하게 두들겨 부수는 최고의 그래픽 스펙터클을 보여줄 것이라는 확고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화끈한 오락영화를 원하는 한국 관객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최근에 헐리우드 오락영화는 점점 맥이 빠지거나, 주인공들이 생각이 많아졌었다. 얼마 전 개봉한 <엑스맨>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들이 고민을 한다! 이러면 답답하다. 고민할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화끈하게 싸워주는 것이 킬링타임에 적합하다.

그런 요구에 확실히 부응하는 헐리우드 영화가 한동안 없었다. 아니, 헐리우드고 어디고간에 없었다. 따라서 '단순무식거대' 스펙터클에 대한 갈망이 한국 사람들 마음속에 축적됐던 것이고, 이번 <트랜스포머3>가 그것에 부응해줄 것이란 기대가 흥행폭발로 나타난 것이다.

모처럼 남자 혼자 가서도 당당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것에 대한 남성 관객의 환호도 있다. 여자와 함께 가지 않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영화들이 그동안 너무 많았었다.

과거에도 한국 관객은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텔론 등이 주도하는 '거대 무뇌 스펙터클'에 환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 스필버그류의 판타지성 활극이나, 카메론이 개척하기 시작한 컴퓨터그래픽 스펙터클에도 열렬한 지지를 보냈었다. <트랜스포머> 브랜드는 그 전부를 다 합친 '거대 컴퓨터그래픽 무뇌 스펙터클'이라는 점을 소비자들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두들겨부수는 특수효과 액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화끈한 액션만 있으면 스토리고 의미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렸을 때 화끈한 히어로물에 열광했던 그 아이의 취향이 평생 가고 있다. 그래서 <트랜스포머3>의 개봉을 진작부터 기다렸다. '얼마나 화끈한 액션일까' 잔뜩 기대하면서.

문제는 한국에 나처럼 수준 낮은 관객이 너무 많다는 거다.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거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일반적 특징이 돼가고 있다. 이번 <트랜스포머3>의 대폭발 흥행이 그 증거다. 극장이 이런 영화만 틀어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든 관객이 이런 영화만 선택하는 것은 더 문제다.

나 같은 단세포 관객만 있으면 곤란하다. 영화문화가 풍부하게 발전할 수 없고, 영화를 보는 깊은 감수성도 배양될 수 없다. 다 큰 어른들이 화끈하게 두들겨부수는 영화에 전 국가적으로 매달리는 건 정말 곤란한 풍경 아닌가?

더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지만 내 안의 아이는 <트랜스포머3>의 표를 빨리 사서 이 화끈한 액션을 체험하자고 아우성치고 있다. 내가 표를 빨리 사려면, 다양한 영화가 사라지고 극장들이 <트랜스포머3>만 상영해야 한다. 아, 큰일이다.

우리나라에 나 같은 관객들만 있다면 블록버스터 독점이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이런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의 극장 독점 사태를 막는 규제가 필요한 것 아닐까.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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