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나라를 뒤흔들 부정선거 증거'라며 흔든 투표용지로 검찰 조사를 받게될 처지에 놓인 가운데,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을 부각하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실관리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투표용지 탈취와 같은 범죄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민 의원이 투표용지를 어떤 경위로 입수했는지보다 선관위의 책임에 집중하는 언론보도 행태가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13일 대검찰청은 중앙선관위가 12일 수사 의뢰한 투표용지 유출사건을 의정부지검에 배당, 수사에 착수했다. 민 의원이 제시한 투표용지가 경기 구리시 수택2동 제2투표구 잔여 투표용지들이기 때문이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ㆍ15총선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 대회에서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투표관리관의 날인 없이 기표되지 않은채 무더기로 비례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앙선관위는 지난 12일 민 의원이 부정선거의 근거라며 흔든 비례대표 투표용지 6장에 대해 "성명불상자가 잔여 투표용지 일부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표용지 탈취는 민주적 선거 질서를 해치는 중대범죄"라며 수사를 의뢰했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 탈취는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행위다. 중앙선관위는 경기도 내 우체국 앞에서 파쇄된 투표지 뭉치가 발견됐다는 민 의원 주장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를 의뢰했다.

아울러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관리 부실을 인정했다. 중앙선관위는 잔여투표용지 관리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정선거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 투표조작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투표용지가 유출과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선관위에 관리 책임을 묻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대다수 언론은 선관위의 허술한 투표용지 관리실태가 도마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선거관리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선관위가 관리소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실관리 책임을 '부정선거 의혹' 수사의 본질인 투표용지 탈취여부, 민 의원 입수경위 등 범죄행위보다 부각하는 기사와 사설들이 보도되고 있다.

14일 조선일보는 기사<'민경욱 공개 6장', 개표장 출입 300명 중 누군가 훔쳤다>에서 "중앙선관위는 이 투표용지가 유권자가 실제 투표한 용지는 아니어서 민 의원이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전례 없는 투표용지 유출로 부정선거 시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비즈는 <민경욱 "투표용지는 도장만 찍으면 기표지"… 선관위는 26일동안 몰랐다>에서 "중앙선관위가 이 투표용지가 경기도 구리 선관위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하면서, 개표조작 의혹은 새로운 전개를 맞았다. 이 투표용지 6장이 이번 선거가 '부정 선거'는 아니더라도 '부실 선거'라는 증거가 됐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조선비즈는 "잔여투표지에 도장만 찍으면 적법한 기표지가 된다. 그러므로 투표가 끝나는 순간 잔여투표지는 화약이요, 투표함은 불이 된다"며 "둘은 될수록 멀리 떨어뜨려야 한다. 그런데도 선관위 직원들은 그 화약을 불바다인 개표장에 들여놓았다"는 민 의원 페이스북 주장을 소개했다. 이어 "국민들이 조직적으로 누가 어떻게 안 했다 하더라도 선거 관리에 대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는 장진영 변호사의 말을 전한 뒤 "장 변호사는 이번 총선에서 서울 동작갑으로 통합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으나 낙선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소제목에는 '경기도 구리, 與윤호중 사무총장 지역구'라고 명시해 여당 지역구임을 부각했다.

동아일보 5월 14일 <있어서 안 될 투표용지 분실… 선관위 책임 통감하고 진상 밝히라>

동아일보는 사설 <있어서 안 될 투표용지 분실… 선관위 책임 통감하고 진상 밝히라>에서 "민 의원이 제기하는 선거조작 의혹과는 별도로 중앙선관위의 투표 관리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며 "투표용지 분실은 누군가가 훔쳤다고 하더라도 선관위가 우선적으로 또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투표용지가 누군가 쉽게 훔쳐갈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리 부실이며 법적으로는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민 의원 주장에 대해 "논리 비약이며 무책임한 행태다. 사라진 투표용지가 수백 장 수천 장에 이르지 않으면 선거조작을 거론하기에 유의미한 숫자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민 의원 손에 들어온 것이 6장일 뿐 사라진 투표용지는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선관위는 남은 투표용지를 확인해서 얼마나 많은 투표용지가 사라졌는지 밝히는 것이 순서"라며 "선거는 민주주의 토대로서 투표용지의 숫자는 가능한 일단위까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관위부터 투명하게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선관위는 투표용지가 없어지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증거로 제시하니 역추적한 것이다. 내가 의혹을 제기하니 반대로 어디서 구했냐고 묻는 격"이라는 민 의원 주장을 전했다. 이날 이들 매체에서는 검찰의 수사착수 소식과 수사의 핵심 쟁점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 <탈취 투표용지로 '부정선거' 주장, 철저 수사해야>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민 의원 주장의 부적절함을 비판했다.

한겨레는 먼저 "볼썽사납고 어처구니가 없다"며 "야당 국회의원이 선관위가 탈취당한 투표용지를 부정선거 증거라고 주장하고, 선관위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양쪽 다 한심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검찰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해 투표용지가 탈취되고 민 의원에게 흘러간 경위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겨레는 민 의원을 향해 "국회의원답지 못한 처신"이라며 "민 의원이 제시한 투표용지가 불법 탈취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민 의원은 먼저 입수경위를 소상히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썼다. 한겨레는 "탈취에 직접 가담했다면 물론이거니와, 단순히 전달받았다 해도 '장물을 취득, 양도, 운반 또는 보관한 자'(형법 제362조)로 처벌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민 의원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선관위에는 투표용지 관리부실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겨레는 기사 <검찰 '민경욱 투표용지 입수 경위' 수사 착수>에서 검찰 수사 착수 소식과 함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한 통합당 내 우려를 전했다. 통합당에서는 현재까지 14명의 당 소속 낙선자가 투표함 보전 신청을 낸 상태다. 한겨레는 "통합당 안에선 민 의원이 통합당 의원이 당선된 선거구에 대해서도 조작설을 퍼뜨리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 "같은 당 소속 당선자마저 부정하고 있는데 당 혁신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주호영 원내대표가 명확하게 선거 조작 의혹에 선을 긋고 넘어가야 한다"는 한 부산경남지역 당선자의 발언을 전했다.

통합당 김세연 의원, 이준석 최고위원 등이 민 의원 등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지만, 통합당 지도부는 이 같은 의혹제기를 조기에 차단하지 않은 채 낙선자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하거나 선관위의 책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경선 출마 당시 당내 부정선거 의혹제기와 관련해 "첨예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 정도로 의문이 제기되면 많은 국민의 의문을 해소하려는 기관(선관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4일에도 주 원내대표는 당 낙선자들의 투표함 보전 신청에 대해 "각각 소송하고 있는 걸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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