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리그를 강타한 승부조작 문제에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고 정부가 이에 대한 방안을 내놓으면서 축구계가 문제 척결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왔습니다. 축구계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인 파급 효과를 고려해 정부, 검찰까지 나선 이번 사태는 축구판을 깨끗하게 만들고, 악습을 뿌리뽑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축구계의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지를 단번에 꺾을 수도 있는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이 축구인,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0일, 올 7월 이후에 프로축구에서 또 한 번 승부조작이 발생할 경우 최악에는 K리그 중단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승부조작이 일어난 구단에 대해서는 K리그 퇴출, 최악의 상황에 따라서는 K리그를 중단할 수도 있으며, 스포츠토토 경기 대상 종목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 차관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선수들의 문제가 아닌 프로축구의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라며 "구단도 책임지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승부 조작, 부정행위 근절을 당부했습니다. 최악의 경우, 리그 중단이라는 초강경책을 통해 축구계에 다시는 부정행위가 뿌리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해볼 수 있습니다.

▲ 승부조작이 근절되지 않을 경우,K리그 중단도 가능하다고 발표한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물론 이번 발표를 계기로 한 사람의 실수가 K리그 전체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면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정부까지 나설 정도로 이번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던 상황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만큼 축구계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적극 대응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팀 퇴출, 리그 중단이라는 초강경책은 K리그 자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독재 국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대책으로, 정부 문화체육관광부가 권한의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 해당 구단에 대한 승점 삭감, 지원금 삭감 같이 축구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축구계 뿐 아니라 어떤 규정이나 법에도 없는 대책으로 오히려 축구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빠지게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승부조작 사태의 핵심은 승부조작을 일으킨 선수, 그리고 이들을 움직인 몸통, 조직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입니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 심판 더 나아가 리그를 운영하는 관계자까지 연루된 다른 나라 승부 조작 사례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 만큼 이번에 일어난 사태에 대한 실체를 완전하게 밝히면서 선수 뿐 아니라 축구계와 관 련있는 인물들이 승부조작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끔 확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러면 아예 판을 엎어버리겠다"는 식의 생뚱맞은 대책은 축구계를 옥죄는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해당 인물에 대한 사법권 차원의 강력한 처벌, 리그 퇴출 같은 처벌 뿐 아니라 이 자체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한 프로축구연맹 또는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장기적이고 탄탄한 근절 대책 수립을 마련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실효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번 승부조작 사태를 통해 이탈리아, 독일, 중국 등의 사례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독일의 경우, 정부와 협의해서 심판 배정 시간 지연, 비디오 판독, 문제가 있는 심판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 등의 규정을 명문화했으며,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부주석이 직접 나서 공안당국이 즉각 반응해 승부조작 척결에 나서 해당 인물의 퇴출, 강력한 처벌만으로 승부조작을 어느 정도 뿌리 뽑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승부조작 척결에 대해 내놓은 대책에서 리그 중단을 논한 일은 없었습니다. 문제점이 있는 부분만 잘 도려내면 될 뿐 리그는 어떻게든 계속 돼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부 조작 사건 발생 후, 축구계가 미온적인 대책을 내놓아 많은 비판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정부는 리그 중단이라는 말보다는 축구계가 자발적으로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었습니다. 승부 조작에 대한 실체를 명확히 밝히고, 이를 위해 축구계와 사법 당국, 그리고 정부가 삼위일체를 이뤄 완전히 뿌리 뽑을 만 한 대책을 내놓고 명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만 처리하기 급급하고, 더 많이 발생할 경우 팀을 퇴출하고 리그를 중단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분명히 최선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리그를 주최하는 주최자도 아닌 조직이 말입니다. 여지를 남기지 않으면서 승부조작을 하지 않은 더 많은 선수들이 진정한 땀을 흘리고 감동받을 수 있는 K리그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방안책'이 K리그나 한국 축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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