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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데이 인 뉴욕’-옛날 사람 된 우디 앨런, 이제는 통하지 않는 관습적인 조크[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5.11 11:48

[미디어스=이정희] 양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오랫동안 미루어지다 5월 6일 개봉했다. 최근 이렇다 할 개봉작이 없어서일까. 박스오피스 1위를 선점하고 있다. 역시 우디 앨런일까? 아니, 그런 찬사보다는 우디 앨런 감독에게 차기작을 기대할 수 있을까란 우려가 앞선다. 성추문도 성추문이지만 이제 2020년, 우디 앨런이 감독이 하는 이야기가 '그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지점에서다. 

최근 우디 앨런 감독이 영화를 여는 방식처럼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역시 다큐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뉴욕을 떠나 지방의 작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개츠비(티모시 살라메 분). 하지만 그는 쫓겨났다고 전해지는 이전의 대학처럼 이 대학에 영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그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든다면 애리조나 유지의 딸인 여자친구 애슐리(엘르 패닝 분)때문이다. 주말 유명 감독인 롤란 폴라드 감독(리브 슈라이버 분)과의 인터뷰가 잡힌 애슐리와 함께 모처럼 뉴욕으로 돌아가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고자 하는 개츠비. 하지만 그들의 야무진 데이트 계획은 인터뷰를 하러 간 애슐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개츠비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이미지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두 이야기의 갈래로 진행된다. 그중 하나는 남자친구인 개츠비의 고생담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뉴욕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뉴요커인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통틀어 가장 로맨틱한 일정을 짜놨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며 여자친구와의 일정은 자꾸만 어긋난다. 

하지만 그런 연애 행보에 좌절하는 그의 절망 사이사이로 차츰 드러나는 건, 뉴욕 상류층의 자제이지만 형이나 친구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삶의 행보를 따라가는 것과 달리 스스로 삶의 여정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갬블러로서 타고난 거 아니냐며 포커판에서 딴 돈으로 고급 호텔을 호기롭게 예약하는 개츠비. 여전히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공부하고 부모님의 제공하는 각종 문화적 혜택을 통해 지적인 여유를 누리지만, 그날 밤으로 예정된 어머니의 파티에 어떻게든 참석하지 않으려 하듯 그에게 부모님과 그 주변 사람들은 그저 '지적 허영'에 들뜬 졸부들일 뿐이다. 책을 읽고 전시회를 보고 피아노를 치고 그렇게 그가 누린 모든 것들을 그저 어머니가 시켜서 어쩔 수 없어서 했던 것들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여자친구의 동생인 챈(셀레나 고메즈 분)의 지적처럼 그런 부의 울타리를 차고 나갈 용기도 없다.

누린 것과 지향하는 것 사이의 '혼돈', 그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년이 개츠비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 속 그 개츠비처럼 방황하는 청춘임에는 동일하지만, 스스로의 삶에 도박을 거는 대신 어머니의 돈을 종잣돈 삼아 재미로 도박판을 다니는 청년에 불과하다. 사랑에 올인하고 싶지만 여자친구는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뜻하게 않게 만나게 된 챈을 통해 부모님의 부는 누리고 싶지만 아직 그 무엇도 열정적으로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찌질한 자신을 시인하게 된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이미지

이렇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에 있어서 우디 앨런 감독은 예의 장기를 발휘한다. 거기에 도시적 감성이 더해지며 영화는 청춘영화 이상의 문화적 감성을 즐길 거리로 제공한다. 거대도시 뉴욕이 아니라 지적 문화적 공간으로서 그곳에서 나고 자란 개츠비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은 비 오는 뉴욕 명소를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런 정체성의 방황 끝에 만나게 된 '어머니의 진실'을 통해 감각적인 문화도시 뉴욕이 가진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역사'에 대한 우디 앨런 식의 풍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애슐리의 엇나가버린 도전 

남성인 개츠비의 서사가 우디 앨런 감독의 장기를 살린 영역이었다면, 또 다른 측면 여성인 애슐리의 서사는 더이상 우디 앨런을 이 시대의 대표적 감독이라 부를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 된다. 

개츠비를 연신 본의 아니게 바람맞히고 있는 애슐리(엘르 패닝 분)는 학교신문 기자로 유명 감독 롤란 폴라드 감독을 만난다는 기쁨에 설레는 여학생이다. 애리조나 출신 은행업계 거물인 아버지에 미인대회 출신의 이력, 살면서 뉴욕은 어릴 적 겨우 두 번 와봤던 이 지방 출신의 여학생은 학보사 기자로 뉴욕에, 거기에 유명 감독을 만난다는 행운으로 인해 한껏 들뜬다. 출발할 당시부터 개츠비는 뉴요커로서 애슐리에게 로맨틱한 데이트 행보를 제시하지만, 이미 인터뷰란 기회에 들뜬 애슐리에게 그런 개츠비의 선물은 자꾸 한 귀로 흘러나간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이미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작품 완성도에 대한 롤란 폴라드 감독의 돌출 행동으로 인해 애슐리가 애인에게 돌아갈 시간은 늦춰진다. 하지만, 이건 애슐리의 생각이다. 천재 감독의 우울증, 이어진 그의 각본가의 뜻하지 않은 가정사, 그리고 뜻밖에 조우한 당대 스타와의 인터뷰는 애슐리가 만난 행운이지만, 그 반대로 그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앳되고 아름다운 여성과의 만남일 뿐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여자만 보면 그 상대방이 누구건 상관없이 '작업 정신'을 발휘하게 되는 이 남성들의 조합은 역시나 우디 앨런 영화의 '전통'이다. 그런데, 그런 전통과 맞물리는 애슐리가 제아무리 애리조나 출신에 뉴욕에 몇 번 와보지도 못한, 심지어 롤란 폴라드 감독을 알게 된 계기조차 개츠비를 통해서일 만큼 문화적으로 미숙하다 해도, 애슐리를 대상화시키는 지점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당당한 여성상까지는 아닐지라도 영화적 장치로서 썩소를 자아내게 한다. 

지방의 작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학보사 기자를 할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가진 여성이 뉴욕의 대감독이란 이유만으로, 혹은 당대의 스타란 이유만으로 그렇게 쉽게 그들의 '언어적 유혹'의 정체를 모른 채 쉽게 무장해제 되어 버리는 장면은 백치미를 넘어 '실소'를 자아내게 할 만큼 전 세대의 관습적 장치이다. 그녀가 매번 꺼내드는 취재수첩이 무색하게 만들 만큼.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런 애슐리와 대비되는 지점에 개츠비를 '자각'시키는 어머니와 챈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모은 돈을 통해 뉴욕의 상류층으로 자리매김한 자수성가의 상징도, 그리고 개츠비에게 자신의 현실을 자각케 만드는 뉴요커 챈의 존재도 영화에서는 개츠비의 자각을 위한 '장치'로 쓰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는 마돈나 아니면 마리아, 남성의 시각에서 자신을 구제할 두 여성상의 협소한 한계 속에 머무르고 만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번 세기 이전에는 통상적이고 관습적인 조크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 시대는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해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성찰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던 이야기를 여전히 능숙하게 변주하고 있는 우디 앨런 감독은 이제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진짜 안타까운 것은 그의 이력보다, 그가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호흡할 수 없는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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