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또 한 편의 의학 드라마가 찾아왔다. 매주 수목 밤 10시, KBS2를 통해 방영되는 <영혼수선공>이다. 안타깝게도 목요일 밤 화제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시간대가 겹치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배우 신하균이 정신과 의사 이시준으로 분한 이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의학적 힐링을 지향한다.

마음이 아픈 시대

아마도 그 '힐링'의 출발점은 친구와 함께 바닷가를 찾은 정소민이 분한 여주인공 한우주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있는 힘껏 오열하고 절규하는 그 장면이 아니었을까? 또한 자신과 더블캐스팅된 아이돌 팬들이 자신의 공연 차례에 상복을 입고 나타나 팔짱을 끼고 앞좌석을 차지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이 보낸 화환을 발로 차는 장면은 어떨까? 그리고 애인이라 해서 도움을 청했는데 변심한 애인은 단독보도의 욕심에 나눈 대화를 단편적으로 편집하여 10년 고생해서 탄 신인상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자 야구 방망이로 그의 차를 짓이겨 버리는 장면은 어떤가?

KBS2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

묘하게도 이 한우주가 정신줄을 놓는 이 장면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들은 저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속으로 화를 꾹꾹 눌러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녀의 일탈과 분노 장애에서 공감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흔히 정신줄을 놓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실낱 같은 경계를 두고 정상과 비정상이 되어 버리고 마는,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상황'을 무수히 겪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과 의사 이시준은 '미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겁니다'라는 진단을 내린다.

'아픈 거다'라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통 속에서 결국 정신을 놓고 자신의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던 엄마를 괜찮다며 딸이 안아주던 장면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현병에 걸린 장재열을 품어주던 지해수의 사랑이 떠올려지는 '처방'이다. 이렇게 <영혼수선공>은 앞서 노희경 작가가 다뤘던 '정신'의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다루고자 한다.

극중 한우주는 안 그래도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10년 만에 각고의 노력 끝에 신인상을 타게 되던 날, 상을 받기 위해 나선 무대에서 그만 음주 측정 거부로 체포되고 만다.

KBS2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

그런데 이 체포가 사실은 ‘해프닝’이었다. 이시준이 애써 지켜주고 싶었던 망상증 환자 동일이 자신이 경찰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탈주하여 벌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명으로 한우주는 모든 것을 잃는다. 언론은 지난밤 마신 술로 그녀를 음주운전자로 만들어 버린다. 제작사 대표는 하루아침에 그녀의 배역을 없애 버린다. 오디션에 나서보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지만 온전히 자신에게 닥쳐온 불리한 결과들. 한우주가 맞닥뜨린 사건은 억울하지만 그 억울함의 ‘보편성’이 <영혼수선공>이 말하는 '아픔'의 근원이다. 한우주처럼, 혹은 한우주처럼은 아니지만 세상에 억울한 일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녀를 억울하게 만든 동일은 어떨까. 시상식장에서 한우주를 체포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매일 순찰을 돌며 취객을 선도하는 등 거리 정비에 솔선수범하고, 날치기범을 향해 몸을 던지는 동일은 그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상실'의 마음이 가져온 망상증에서 헤매고 있다. 경찰이 아니지만 경찰이고픈 자신의 '지향'이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잃어버리고 가질 수 없음,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번 곱씹으며 삼켜야 하는 대부분 고통의 근원들 아닐까. 사람을, 부를, 일을, 관계를. 살아가면서 성취하는 순간보다, 그것을 가지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이, 그럼에도 가질 수 없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 되돌아야 하는 시간들이.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스스로 빨간 약을 바르고 있고, 그것마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극중 한우주처럼 폭발하거나 동일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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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준이 건네는 위로와 치유

KBS2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

이시준은 그런 사람들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속 의사 이라부처럼 정신과적 조치 이상의 치료를 통해 ‘치유’에 다가간다. 이시준은 가장 큰 원인을 고장 난 마음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의 잣대에 나를 가두지 말라, 칭찬도 비난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찰나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순찰을 하고 싶은 동일과 함께 거리를 헤매듯 직접 환자의 아픔에 뛰어든다. 어떻게든 환자와의 유대를 가지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인정하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공중그네> 속 의사 아라부가 때로는 환자보다 더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싶듯이 이시준 역시 매일 밤 잠 못들고 '살자'를 외치며 뛰는, 그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과 아픈 사람의 간극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드라마 <영혼수선공>은 우리 시대 마음의 아픔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록 최고의 화제작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제작의도에 맞게 '힐링'의 기억을 가진 드라마로 남을 수 있도록 완주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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