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재계의 우려'를 전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무노조 경영에 대한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이뤄지자 사과 내용이 한국 기업 문화의 정답처럼 비춰질까 재계가 우려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일부 보수지에서는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 부회장의 사과와 관련해 반기업 정서의 확산을 우려하거나 '강성노조'를 부각하는 보도들이 이어진다.

조선일보는 8일 <"삼성이 자녀 승계 포기하면 우린?" 난감해진 재계>에서 "재계에서는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이라 삼성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마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 게 선(善)이고, 물려주는 게 악(惡)으로 비칠까 봐 난감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5월 8일 <"삼성이 자녀 승계 포기하면 우린?" 난감해진 재계>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한국적 지배 구조와 경영 체제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판과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일부 좌파 진영의 여론몰이에 반(反)기업 정서가 일방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의 요구를 받아들여 내놓은 반성문이 우리 기업 문화를 바꾸는 정답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한 5대 그룹 임원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 포기를 했으니 다른 그룹도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의 '재계 트랜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고,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주인 없는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차례 봐 왔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중단 선언과 관련해 "무노조 경영이 폐기됨에 따라 삼성의 큰 장점 중 하나가 꺾이게 됐다. 이 부회장 발표는 기업인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의 발언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강성 노조의 왜곡된 노사관계에 대한 반성은 없이 무노조 경영 자체가 '악'이라는 사고만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조선일보는 7일 관련 사설에서 "합리적 대화보다 투쟁과 폭력이 앞서는 한국적 노동 현실에서 만에 하나 삼성마저 노조로 인해 세계적 경쟁력을 잃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 한 바 있다.

뒤이어 조선일보는 "그동안 한국의 재벌 구조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했던 해외언론들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보도를 소개했다. 이 부회장 사과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비판적 목소리는 '공세'로 치부했다. (조선일보 5월 8일 '與 "이재용, 사과만으론 책임 못 면해" 공세')

조선일보 5월 8일 <與 "이재용, 사과만으론 책임 못 면해" 공세>

문화일보는 7일 사설<한국기업 언제까지 경제외적인 일에 발목 잡혀야 하나>에서 "한국사회에서는 주인 없는 기업과 전문경영인의 신화가 꺼질 줄을 모른다"며 "하지만 기업 지배구조에는 어떤 정답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껏 성취해온 글로벌 삼성의 위업이 한국의 후진적 노조 문화에 휘둘리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스럽다"면서 "정치권력의 강요나, 경제 외적(外的)인 일에 발목이 잡힌 채 주눅 든 국내 기업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고 했다.

이 같은 조선·문화일보의 논점은 "국내 최고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보장한다고 해서 헌법에 보장된 노조 결성 등 노동 3권을 제약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동아일보 5월 7일 사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화두에 떠올랐을 정도로 주주 이외에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중시되는 게 경영의 트렌드"(중앙일보 5월 7일 사설) 등 타 주요 보수언론과도 상당한 논지 차이를 보인다.

조선일보 5월 7일 사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

조선·문화일보의 보도와 사설은 이 부회장의 죄를 지우고 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라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불법 경영승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형량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 준법감시위 설치를 권고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의 활동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언급했고,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 사과에 대해 "의미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김지형 변호사는 2009년 대법관 시절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불법승계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 2부 주심으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 등지에서 이번 이 부회장 사과에 대해 감형을 겨냥한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부회장 사과에서 구체적 방안은 빠졌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는 7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말 진정성 있는 사과라면 범죄행위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본인이 법적 책임을 질 각오를 밝혔어야 하는데 일언반구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방송에서 박용진 의원은 "이실직고, 법적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앞으로 잘할 테니 봐주라는 수준이어서 실망스럽다. 면죄부를 받기 위한 과정이었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7일 관련 사설에서 "이 부회장의 발표에서는 구체적인 책임 인정, 재발 방지 대책, 피해자 구제와 같이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를 찾아볼 수 없다"며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수준의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다짐이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삼성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했다.

8일 경향신문은 삼성피해자공동투쟁,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공대위(공대위) 등이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기습적으로 이뤄진 이 부회장의 기만적인 대국민사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하성애 삼성피해자공동투쟁 대표는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를 '의미있게 평가한다'고 수용한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개선 방안을 요구했다는 준법감시위의 권고가 실현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공대위 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는 "대국민사과는 처음부터 이 부회장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재판부와 준법감시위가 합작해 만든 작품"이라며 "김용희씨를 비롯해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사과와 해결 방안을 담지 않은 사과를 수용한다면,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면책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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