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하면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을 떠올리는 팬들이 많습니다. 2005년 기적 같은 리그 준우승을 일궈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인천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팀플레이 위주의 경기 운영으로 늘 K리그 다크호스 팀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렇다 할 스타 선수는 많지 않아도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팀으로 떠올랐던 인천의 비상은 매 시즌마다 많은 팬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인천을 지난해 시즌 도중, 허정무 감독이 맡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비교적 냉랭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내고 가장 오랫동안 국가대표 감독을 재임하면서 나름대로 지도력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젊은 선수, 무명 선수가 많은 팀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창의적인 것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다보니 기존 팀 컬러에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일지에 대한 부분도 문제였습니다. 긴 시간을 내다보고 팀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허정무 감독의 새로운 도전을 눈여겨보는 팬은 국가대표 감독직에 다시 도전했을 때만큼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 허정무 감독 ⓒ연합뉴스
하지만 반 시즌을 치르고 팀을 정비해 새 시즌에 나선 허정무 감독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며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이후 인천은 리그, 컵대회, FA컵에서 모두 4승 5무를 기록하며 패배를 모르는 팀이 됐는데 그 덕분에 꾸준하게 승점을 챙기며 리그 순위도 5위권 안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매 라운드마다 달라지는 순위표를 보다가 "어, 인천이 이렇게 잘 했어?"라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인천은 다시 예전의 끈끈한 팀으로 떠오르며 비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허정무 감독이 키운 어린 선수들의 힘이 컸습니다. 특급조커 박준태을 비롯해 한교원, 김재웅 등 주전 신예 선수들은 허정무 감독이 부임한 뒤 꾸준한 관심과 훈련을 통해 길러낸 자원들입니다. 이들은 시즌 초반에는 적응하는 단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점들이 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연속 무패를 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팀 여건상 기존 어린 자원들을 키워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선수 키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던 허 감독은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여 이들을 길러냈고, 이들은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며 연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패배 의식에 잡혀있던 선수들에 허정무 감독이 새로운 힘을 불어넣으며 자신감을 찾게 한 것이 눈에 띕니다. 허정무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현재 인천 감독을 역임하기까지 숱한 일들을 겪으며 K리그 감독 가운데서는 가장 잔뼈가 굵은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선수들을 만나고 경험했던 것을 잘 전달하고, 선수가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게끔 믿어주는 리더십을 통해 인천 선수들은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들이 됐습니다. 여기에는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 지도 철학으로 성공을 거뒀던 사례를 잘 활용한 것도 컸습니다. 허 감독의 지도 아래 선수들이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잡혀 있으니 내부적인 어려움, 그리고 팀 동료가 세상을 등진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꾸준하게 경기력을 유지하고 리그 5위라는 괜찮은 성적도 낼 수 있었습니다.

허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한 단계씩 밟아나가는 생각으로 팀을 가꿔보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지금 당장 성적이 좋지는 않을지라도 잘 키워낸 선수들을 통해 훗날에는 우승권에 도전할 만 한 팀을 만들겠다는 말을 자주 해 왔습니다.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없어 큰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 하지만 점점 허정무 인천 팀만의 색깔을 입혀 '경인 더비' 같은 스토리도 만들고 많은 팬의 주목을 꾸준하게 받는 팀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목표가 있는 감독 아래 선수들도 비전을 갖고 함께 뛴다면 2005년의 기적이 또 한 번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는 인천 팬들이 인천 유나이티드를 꾸준하게 지지하고 응원하는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도전을 통해서 허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에서 물러나면서도 완전히 떨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깨려 합니다. 성과를 냈어도 몇몇 선수에 의존하고 특징이 없었다는 이유로 다소 저평가를 받았던 허 감독은 오래 주어진 시간동안 팀을 잘 가꿔 인천을 명문팀으로 만들고 자신도 K리그의 진정한 명장 반열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 성적만 좋을 뿐 내용이 없는 감독이라는 오명을 씻고 진짜 명장으로 도약하는 허정무 감독의 도전은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면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월드컵대표팀을 맡았을 때 허정무 감독이 자주 한 표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유쾌한 도전'입니다. 어떤 도전이든지 유쾌한 마음으로 준비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뜻에서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국가대표팀과는 다른 환경이지만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조용한 혁명을 준비 중인 허 감독의 '새로운 유쾌한 도전'이 올 시즌,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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