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도청은 불법이다. 도청된 내용을 누설하는 것 또한 위법이다. 민주당 당대표실을 누가 도청했는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정황적 근거와 동기의 추론을 거쳐 가장 확실한 이해당사자인 KBS가 유력 혐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KBS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연합뉴스
도청을 누가 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도청을 누설한 이는 확실하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다. 문제의 발언을 한 한 의원은 문방위 회의에서 "이것이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다"라고 했다. 이후 말을 바꾸며 발뺌하고 있지만 자신이 어디서 그 문건을 입수했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불법 도청과 그 내용의 누설, 기시감이 든다. 수년 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삼성 X파일 녹취록' 파문과 판박이다. 당시 MBC 이상호 기자는 불법 도청, 감청에 어떠한 형태로도 간여한 바 없었지만 단지 불법으로 도청된 내용을 보도했단 이유만으로 죄인이 됐다. 이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6년 이상호 기자에게 유죄 판결을 한 서울고등법원은 "언론에 취재원 접근 및 정보 공표의 자유가 있음에도 통신비밀보호법이 도청 행위와 이에 따른 내용의 공개 및 누설을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도청의 폐해를 원천 봉쇄하고 통신비밀을 강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할 재판에서도 불법 수집된 도청 자료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규정한 것은 불법도청 산물은 당초부터 존재해선 안 된다는 입법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13일, 이른바 '안기부 X파일 녹취록'을 인용해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던 2심을 뒤집어 일부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게재한 행위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으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판결이었다.

앞서, 노회찬 전 대표는 17대 국회의원이던 200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앞서 '안기부 X파일' 보도 자료를 내고 삼성그룹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를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었다. 노 전 대표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대법원은 유죄 취지의 판결에서 '공익적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으로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방법의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의 사례는 불법도청과 이를 누설한 행위에 대해 현행 법체계가 어떤 기준과 잣대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케 한다. 불법도청은 당초부터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고, 이를 누설하는 행위는 제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라고 한들 용납되지 않으며 국회의원의 면책 대상도 아니다.

존재해선 안 되는 행위,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최소한의 공익적 목적도 아니라 오직 자신이 속한 당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그 불법 자료를 공공연히 누설한 한선교 의원의 책임은 또 어떻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지난 2005년 삼성이 발표한 대국민사과문의 일부 문장으로 대신하겠다.

"(중략)아울러 어떠한 경우에도 옳지 못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으며, 금번 사태의 원인이 된 불법도청과 무책임한 공개 및 유포는 개인의 인권확보와 우리 사회의 민주발전을 위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_ 2005년 7월 25일, 삼성 대국민 사과문 전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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