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성폭력을 시도한 가해자 혀를 깨물어 6개월 구속수사에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피해자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당시 판결을 두고 "재판부의 문제적 인식"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잘못된 판결이라고 했다.

‘미투 운동’이 촉발된 2018년 12월, 최말자(74) 씨는 부산에서 서울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아왔다. 성폭행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로 결론 내려진 56년 전 판결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서다.

1964년 당시 18살이던 최 씨는 친구와 집에 가던 도중 가해자가 뒤따라오는 걸 알아차렸다. 친구를 지키기 위해 최 씨는 가해자가 다른 길로 가도록 유인하던 중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최 씨를 세 번이나 쓰러뜨리고 입을 맞추려고 시도했다. 최 씨는 이 과정에서 머리를 돌에 부딪치기도 했다. 가해자는 최 씨의 입을 벌리기 위해 코를 막았고 입을 벌리는 순간 들어온 가해자의 혀를 최 씨가 깨물었다. 가해자의 혀는 1.5cm 잘렸다.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6일 KBS1 라디오<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최 씨가 재심을 청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56년 전 판결은 “재판부의 문제적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판결문을 보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밀치고 코를 막은 행위 등이 피해자를 반항하지 못하게 한 행위가 아니며, 소리를 지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 등이 언급돼 있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길을 묻는 것은 사춘기의 호기심이며 피해자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문장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의 방어행위가 상당성을 넘어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 소장은 “피해자는 조사받으러 갔다가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6개월 동안 수감됐지만 가해자는 강간미수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해자 측 10명 이상이 피해자 집으로 쳐들어와 칼로 협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불구속으로 수사가 진행됐고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최 씨는 6개월동안 구속수감됐으며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반면, 가해자는 최 씨의 집에 침임해 협박한 특수주거침임과 특수협박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 소장은 “재판부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다는 생각이 들고 피해자분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가해자와) 결혼하면 쉽게 해결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며 “성폭행범과 결혼하라는 말”이라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최 씨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오늘(6일) 오후 1시 부산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씨에게 유죄를 판결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최 소장은 “피해자분께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기 삶에 대해 돌아보던 시기에 미투 운동이 촉발됐다. 아직까지 많은 여성이 성폭력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재심 청구 사건을 해결하려는 과정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여성들에게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재심을 시작하려고 하신다”고 전했다.

또한 본인의 이름이나 신분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본인의 이름을 가지고 이 부분을 알리고 싶다는 의지가 있으셨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