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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아시아’ 1부- 국적 나이 직업 모두 다른, 이 아버지들의 삶의 원천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5.06 10:15

[미디어스=이정희]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EBS <다큐프라임>은 아시아의 가족들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어느덧 딸들을 결혼시킬 즈음에 이른 아버지들,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 살아온 이 아버지들의 현재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아버지들에게 딸들을 결혼시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결혼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서 사위가 될 사람에게까지 발맞추어 걷는 전례도 사라져간다. 딸들은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가 아니라, 동등한 동반자로서 남편과 함께 입장한다. 다큐프라임은 전통적 의미의 결혼에서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선 아버지의 심정에 주목한다. 관습성을 넘어, 딸의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마치 자신이 지나온 시간 위를 걷는 듯하다던 그 '아버지'의 소회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들

5개국 국제공동제작 EBS 다큐프라임 <패밀리 아시아> 1부 ‘나의 아버지’ 편

베트남의 아버지 반뚜안 씨. 한 골목에서 30년을 살아온 그에게 딸은 어떤 의미일까? 매일 학교에 딸을 데려다주던 아버지. 어느 비 오는 날 오토바이가 그만 빗물에 미끄러져 웅덩이에 빠졌을 때 혹시나 딸이 다쳤을까 안아 올렸던 그 기억이 여전하듯, 딸은 그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버지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그러나 이제 결혼을 앞두고 설레며 빛나는 딸들처럼 청춘이 모두 아름답게 빛나는 건 아니다. 아버지 반뚜안 씨에게 청춘을 상징하는 옷은 군복이다. 1977년 캄보디아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전쟁의 기억은 참혹하다. 특히 1976년에 입대했던 동기들은 아직 군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참전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낳은 딸, 그래서 더 애틋했다. 그런 딸을 그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때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고 아버지는 이제야 말한다. 화가 나도 적을 다루듯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전쟁의 기억은 오래도록 아버지의 상흔이 되었다. 

5개국 국제공동제작 EBS 다큐프라임 <패밀리 아시아> 1부 ‘나의 아버지’ 편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아버지는 어떨까? 캄보디아는 11월이 결혼 시즌의 시작이다. 하지만 크레브 씨의 막내딸 니타는 돈을 더 모아 식을 올리겠다며 조상들의 영전에 인사만 드리고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며 살아왔다는 아버지 크레브 씨. 하지만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져 왔음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농담 한번, 장난 한번을 치지 못한다. 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역시 아버지가 경험했던 참혹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아버지는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꿈을 꾸면 끔찍했던 기억 속으로 소환되곤 한다. 1975년 크메르루주에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던 아버지는 3년 넘게 군대에게 보냈다. 베트남과의 전쟁 기간, 전쟁의 공포와 함께 먹을 것이 없는 기아의 고통이 소년 크레브를 괴롭혔다. 농민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며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크메르루즈는 배고프다고 해도 혹은 요구되는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해도 투옥했고, 배고픔을 못 이겨 혹 먹을 것이라도 훔치거나 하면 살인을 할 정도로 혹독한 군 기강을 유지했다. 그 죽음과 공포의 시간 속에서 아버지는 오로지 살아남는 법만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참혹한 기억을 자식들은 모르길 바랐다.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을 아낀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자식을 위해 달려온 성공 인생 

5개국 국제공동제작 EBS 다큐프라임 <패밀리 아시아> 1부 ‘나의 아버지’ 편

한국의 김호영 씨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2시에 끝나고 집에 돌아와 5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건설 현장을 따라 지방을 떠돌며 한 달에 한번 집에 들르며 30여 년을 타지에서 떠돌았다. 그렇게 돈을 버느라 아빠 노릇도 못 하는 사이 딸 소연이는 훌쩍 자라 어느덧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쇼호스트를 준비하며 결혼을 앞둔 딸 소연 씨. 결혼은 소연 씨가 하는데 이제 노후의 부모님이 더 설레하신다. 소연 씨가 결혼할 집인데 가구 배치를 놓고 부모님이 설왕설래하는 상황, 한국적 결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 결혼이니 내가 알아서 한다 하니 섭섭해하신다. 농담 반 진담 반, 엄마아빠 집 같다는 딸, 그래도 행복해 보이니 참는다는 요즘 결혼의 풍속도다. 

5개국 국제공동제작 EBS 다큐프라임 <패밀리 아시아> 1부 ‘나의 아버지’ 편

인도의 풍속은 우리보다 한 술 더 뜬다. 연애 결혼을 바라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이제 결혼을 앞둔 카비타는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최선을 선택해주시리라 믿으며 중매 결혼을 선택했다. 아버지 라메시는 교육, 직업, 집안을 따져 알맞은 남자를 골랐다. 

그렇게 딸에게 맞는 조건의 남자를 골라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결국 아버지의 경제력이다. 일자리가 없었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수도 파이프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라메시. 그는 자신의 여력이 되는 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기 위해 애쓴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자리이다. 25년 전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왔을 때 태어난 딸, 자식이야말로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몽골의 바토그토는 대가족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유목민의 삶을 이어받아 일가를 이루었다. 사회주의 체제 시절 몽골은 집단 목축을 하여 개인 소유의 가축이 없었지만 1992년 민주주의 이후 자기 소유의 가축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열심히 일했던 바토그토네 집안은 이제 300마리의 양떼를 지니게 되었다. 

5개국 국제공동제작 EBS 다큐프라임 <패밀리 아시아> 1부 ‘나의 아버지’ 편

그리고 열심히 일한 노력의 결과로 네 딸을 모두 도시의 대학을 보냈다. 유목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둘째딸이 도시에서 대학을 나오고서도 이웃 유목민 아들과 손주를 낳아 돌아오니 기쁘다.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과도 같다. 오죽하면 딸은 이웃 집안으로 시집을 가도 손주는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할까.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몽골 그리고 한국, 서로 다른 아시아의 아버지들이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진 자리 궂은 자리 마다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나라는 달랐지만, 그들이 살아왔던 원천은 결국 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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